[미국, 아프간 공격] "전쟁 사정권" 교민들 피란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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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시작된 8일 파키스탄.우즈베키스탄 등 아프가니스탄 접경국에 있는 우리 교민과 공관원들은 극도의 긴장과 불안감에 휩싸였다.

상당수 상사 주재원들은 미국 테러사태 직후 철수한 상태지만 잔류 중인 교민 등은 확전이나 과격 이슬람주의자들의 보복 테러 등 신변위협 사태에 대비, 긴급 대피계획을 마련하는 등 비상태세에 돌입했다.

파키스탄 남부도시 카라치의 이시영 총영사는 국제전화에서 "전쟁 사정권에 들었다는 불안이 확산하면서 교민끼리 비상연락을 취하며 피신준비 중인데 테러 소문까지 돌아 극도로 흉흉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 대피 준비=파키스탄의 경우 국내 기업 주재원 등 80% 이상이 이미 떠나 대사관 관계자.KOTRA 지사 임직원, 그리고 일부 자영업자 등만 남아 있다.

카라치의 李총영사는 "현재 남은 45명에게 상황이 급박해지면 모두 영사관으로 대피할 것을 지시했다"며 "현지 경찰에 시설보호도 요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국경지대인 라호르와 이슬라마바드의 교민들도 고속버스로 남부지역이나 인도로 대피하는 비상대책을 마련해 놓은 상태다.

우즈베키스탄의 교민 8백여명은 지난주 미군병력을 실은 수송기가 도착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교민회장 정기호(丁奇鎬.46)씨는 "이곳에선 1999년 2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국립은행 등 여섯곳에 폭탄테러를 한 적이 있어 교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9일 오전 긴급 대책회의를 열기로 했다"고 말했다.

타슈켄트의 삼성전자 최석주(崔石柱.42)과장은 "공항이 폐쇄될 경우 육로로 대피하기 위해 가족 모두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비자를 받아놓았다"고 했다.

◇ 고조되는 반미 분위기=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와 카라치 등 주요 도시는 상가들이 철시한 가운데 반미시위가 이어지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다.

지난달 2일 여행차 이슬라마바드에 들어갔다가 테러사건 이후 발이 묶인 이정환(29.연세대 대학원생)씨는 "미국 공습 직전 인근 도시 라왈핀디에서 반미 시위가 열리는 등 살벌한 분위기"라고 전했다.

특히 15만명 이상의 아프간 난민이 몰려있는 카라치에는 대규모 반미 시위 소문과 함께 일부 극렬 이슬람단체들의 주요 시설 테러설, 무장범죄집단 '다코이트'의 준동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종환 KOTRA 카라치 무역관장은 "며칠 전부터 '미국인 한명을 죽인 사람에겐 50만루피(1만달러)를 주겠다'는 정체불명의 e-메일이 오는 등 반미 분위기가 극에 달해 있다"고 전했다.

김동섭.강주안.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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