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어느 과학영재의 좌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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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내 아이가 혹시 영재가 아닐까'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아이들을 위한 영재 교실이나 영재 과외 등도 성업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초등학교 졸업 후 포항공대에 예비입학했다가 적응에 실패한 송지용군의 사례에 이르면 얘기가 간단치 않다.

*** IQ 높지만 응용력 부족

지능지수가 175인 宋군은 생명과학이나 우주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인 13세 소년. 그는 지난해 2월 초등학교 졸업 후 두달 만에 중졸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다시 넉달 만에 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수능시험에서 3백54점을 받아 포항공대 생명공학부에 도전했으나 그의 점수는 합격선과 거리가 있었다.

대학측은 宋군의 과학적 천재성에 관심을 갖고 조건부로 입학을 허가했다. 한 학기 동안 수학.물리.화학 세과목 12학점을 수강한 뒤 수학능력을 평가해 입학 여부를 가리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중.고교를 건너뛴 宋군이 국내 최고 수준 대학의 강의를 따라잡기엔 벽이 너무 높았다. 이해력과 지식 습득력은 뛰어났지만 약한 지적 토대로 인해 응용력이 부족하다는 것이 대학측의 판단이었다. 그렇다고 宋군 한 명만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없어 결국 대학측은 2학기 들어 宋군에게 귀가 조치, 즉 탈락을 결정했다.

한 학기 동안의 '영재 실험'에 대해 宋군의 아버지는 한 신문 인터뷰에서 "어린 아이 한 명을 대학생들과 똑같은 수업에 집어넣고는 따라올테면 따라와봐라 하는 식은 무책임하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宋군의 좌절은 우리 사회에 영재를 키워내는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는 진단에 전문가들은 의견을 같이했다.

실제로 지난 5공 시절 정부가 선발했던 영재 1백44명을 본사 취재팀이 16년 만에 다시 추적, 그 가운데 57명을 조사한 결과 95%가 어떤 형태의 영재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못했으며, 초.중.고교에서 학업에 뜻을 잃었거나 고교.대학 입시에서 실패한 경험이 10명 중 네명꼴로 나타났다. 또 과외를 한 경우도 63%로 나타나 영재들이 각자의 특성을 살려 뻗어나가지 못하고 입시 위주의 교육에 매몰돼 있었음을 보여줬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정부가 확정한 과학영재고 운영 방안은 기대와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하다. 바로 宋군과 같은 영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시스템이 처음으로 가동되기 때문이다. 정부 계획으로는 현재의 전국 16개 과학고를 대상으로 이달 중 공모를 받아 우선 두 곳을 과학영재고로 전환, 내년 하반기에 신입생을 뽑고 2003학년부터 수업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정부가 구상하는 과학영재고의 모습은 기존 학교 교육의 틀을 완전히 깬다. 영재교육 주무부처인 교육부 대신 과학기술부가 재정 지원과 학교 운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한다는 것부터 그렇다. 입학에 나이 제한이 없고 초.중학교 과정을 이수하지 않아도 된다.

무학년제 및 다학기제로 운영하며, 교사의 50% 이상을 박사학위 소지자로 채우고 나아가 대학교수에게 개인교습을 받을 수 있게 해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 수준에 따른 맞춤교육을 한다. 졸업생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한다.

*** 체계적 교육 시스템 시급

그러나 과학영재고 출범에 앞서 영재교육의 원리와 제도에 대한 합의, 영재를 판별하는 기준과 영재교육 프로그램 마련, 영재교육을 담당할 교사 확보와 교육 등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다.

특히 입시 명문고로 변질된 과학고의 전철을 다시 밟게 되지 않을지 우려가 크다는 점을 감안, 입학생 선발이나 졸업생의 상급학교 진학 과정에 파행적인 과열 입시 경쟁이 개입할 여지가 없도록 합리적인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두뇌경쟁이 치열한 오늘날 지식기반사회에서 국가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과학영재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일은 한시라도 늦출 수 없다. 논란만 거듭하는 사이 제2, 제3의 송지용 군이 영재의 싹을 키우지 못하고 시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천수 <사회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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