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인사이드피치] 서로 기피하는 '드림팀Ⅳ'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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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인물이 없나, 애국심이 없나. 오는 11월 6일 대만에서 열리는 야구월드컵(제34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할 국가대표팀이 감독을 아직 구하지 못했다.

프로-아마 혼합팀인 '드림팀 Ⅳ'가 참가하기로 결정됐으나 선수들을 지휘할 마땅한 감독이 없다. 아마측인 대한야구협회는 프로측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프로 출신 전임 감독 또는 프로 현역 감독을 선임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프로측에서는 현재 포스트시즌이 진행 중인 데다 전임 감독 가운데는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이유로 아마측에서 맡아주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프로선수 18명과 아마선수 6명으로 짜인 대표팀의 선수 구성으로 볼 때 프로 현역 감독이 수장을 맡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KBO도 포스트시즌 팀이 결정되면 탈락팀 가운데서 감독을 선임하겠다는 것이 기본 입장이었다. 그러나 막상 포스트시즌 진출팀이 가려졌는데도 KBO는 감독을 구하지 못했다. 프로감독들이 마무리 훈련 등을 핑계로 감독 자리를 고사해서다. 겉으로는 일정이 바쁘고 대표팀 감독을 수행할 여유가 없다지만 더 큰 이유는 다른 데 있다. '괜히 맡았다가 비난만 받을 확률이 크다'는 무사안일주의가 감독직을 고사한 더 솔직하고 더 현실적인 이유다.

대표팀은 지난해 시드니 올림픽처럼 프로선수들 가운데 최정예로 짜인 대표팀이 아니다. 프로 입단 3,4년차 이내의 젊은 선수들 위주로 선발됐고 이번 대회보다 내년 부산 아시안게임에 초점을 맞춘 멤버다. 반면 일본이나 미국.쿠바.도미니카 등 야구 강국은 두터운 선수층을 바탕으로 정예 멤버를 파견한다.

일본은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에 연패한 아픔을 씻겠다는 각오로 프로 정예 멤버들이 주축을 이뤘고 미국과 도미니카.나카라과 등은 메이저리그 40명 로스터에 포함되지 않은 프로선수들이 참가한다. 미국의 수준은 지난해 올림픽과 같다고 볼 수 있고, 올림픽 은메달의 쿠바는 미국에 상처난 자존심 회복을 벼르고 있고 홈팀 대만은 일본 프로 출신까지 포함시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의 상위 입상은 힘들어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감독 후보들은 총대를 메고 나갔다가 비난의 화살을 두들겨맞는 것보다 아예 핑계를 대고 빠지는 것이 현명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지난달 22일 74세 생일을 맞은 LA 다저스의 토미 라소다 부사장은 그날 운동장에 모인 4만여 관중 앞에서 "내가 현역 감독에서 물러난 뒤 올림픽 대표팀 감독 제의가 왔을 때 수락한 이유는 금메달에 대한 욕심도, 명예욕도 아니었다. 그 이유는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대답뿐이었다"는 말로 피끓는 애국심을 과시했다.

프로 이전 세대의 야구선수들은 '태극 마크'가 달린 유니폼을 한번 입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태극 마크를 단 선수들은 유니폼을 쓰다듬으며 밤새 잠을 못이루고 뒤척였다. 당시 선배들의 뛰는 가슴을 기억해 보자. 조국을 대표한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이토록 땅에 떨어졌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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