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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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명분은 신분에 따라 반드시 지켜야 할 도의상의 본분이다. 실리는 실질적인 이익을 뜻한다.

명분은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로 표현되는 공자의 정명사상에서 유래한다. 이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한다"는 뜻이다.

임금이 임금의 도리와 역할을 다할 때 직분에 어울리는 바람직한 임금이 되고, 신하는 신하의 도리와 역할을 다할 때 직분에 어울리는 바람직한 신하가 된다. 아버지와 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명분은 이 네가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선생은 선생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하며, 주인은 주인다워야 하고 손님은 손님다워야 한다. 이처럼 명분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으로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그래서 공자는 네가지만 열거한 것이다.

명분을 모두 지키면 바람직한 사회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폐해가 심각하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면 나라가 어지럽고 백성은 고통에 빠진다.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는 임금과 신하는 자격이 없다. 이러한 논리는 '자격이 없는 임금이 있으면 몰아내고 자격 있는 임금으로 바꿔야 한다'는 논리로 발전할 수 있다. 이른바 맹자의 혁명사상이다.

그런데 지금은 명분의 뜻이 바뀌어 실리와 대비된 개념으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서 명분은 주로 '어떤 일을 할 때 남들이 수긍할 수 있는 합리성을 얻는 것'이란 의미다.

명분이 있으면 남들에게 인정받고 명분을 잃으면 배척당한다. 명분 없는 행위로 얻은 실리는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으므로 먼 안목에선 실리가 못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명분에 맞는지를 늘 따지는 것이다.

이기동 교수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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