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정치는 자기 양보, 난 어디 가서 싸운 적 없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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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호 10면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과 고흥길 의원이 지난달 28일 오후 환한 표정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김 의원은 원내대표에, 고 의원은 정책위의장에 지난달 29일 사실상 확정됐다. [뉴시스]

김무성(4선·부산 남을) 의원이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된다. 김 의원과 원내대표 자리를 다툴 것으로 보였던 친이계 이병석 의원이 출마를 포기하면서 김 의원이 단독 후보가 됐다. 그는 4일 열리는 의원총회에서 원내대표로 추대될 예정이다. 정책위의장은 러닝메이트인 고흥길(3선·성남 분당갑) 의원으로 정해졌다.김 의원이 여당의 원내대표가 되면서 ‘협상의 정치’에 대한 기대가 높아가고 있다. 그는 협상론자다. 평소 “정치는 협상이자 절충”이란 말을 많이 한다.민주당도 7일 원내대표를 선출한다. 이석현·김부겸·박병석·강봉균·박지원(기호순) 의원이 후보로 출마했다. 민주당에도 이번엔 강경파가 보이지 않는다. 대체로 합리적 대화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정치권에선 “모처럼 여야 협상의 정치를 볼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말이 나온다.

이번 주 여야 원내 사령탑 교체, 협상의 정치 복원될까

사실 18대 전반기 국회는 여야 대결의 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반기 마지막 본회의마저 파행으로 끝냈다. 지난달 29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기업형 수퍼마켓(SSM) 규제 강화 법안 등을 처리하려 했으나 또 의견이 갈리면서 본회의를 열지 못했다. 18대 내내 이런 식이었다. 18대 국회는 원 구성부터 힘겨웠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국회에 해머가 등장하는 폭력 사태까지 빚어졌다. 올해 예산안 처리를 놓고선 야당의 점거 농성과 여당의 단독 처리가 이어졌다. 거기에 ‘협상’이란 단어는 꼭꼭 숨어 있었다.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은 7일
당초 여당에서는 이병석 의원 외에도 정의화·황우여·이주영 의원 등이 출마를 고려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김 의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하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례적인 일이다. 정치란 권력을 놓고 쉽게 양보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여당의 원내 사령탑 자리가 쉽게 정리됐다. 왜 그랬을까.친이계인 한 의원은 1일 “선수나 정치력, 그리고 추진력이나 기획력 등을 고려할 때 사실 김 의원만 한 사람이 없다는 게 여권 내부의 생각이며 그를 추대하게 된 원인이다. 친이 측에서 보면 박근혜 전 대표와 채널이 전혀 없던 상황에서 이제 다양해진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에 나선 의원들이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이석현·김부겸·박병석·강봉균·박지원(왼쪽부터) 의원. 순서는 기호 순이다. 후보들은 강경파라기보다 합리적 대화주의자들이다. [연합뉴스·뉴시스]

그는 “김 의원이 박 전 대표와 소원해졌지만 친박계 의원들 중 상당수는 아직도 관계가 깊다”고 말했다. 실제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캠프에서 활동하며 친박 의원들과는 동지적 관계를 형성한 적이 있는 그다. 친박계 일부 인사 중에는 박 전 대표와 김 의원이 갈등해 “친박에는 좌장이 없다”고 했을 당시 “그래도 박 전 대표가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김 의원을 감싸안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낸 이도 있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도 “박근혜 전 대표와 김 의원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 않느냐. 하지만 원내대표 자격으로 박 전 대표와 대화하는 것은 과거 친박계 좌장으로 소통하는 것과 또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병석 의원을 찾아가 직접 설득하고 러닝메이트까지 불러서 악수하는 모습을 만들어낼 줄 아는 사람이 김무성”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 의원이 박 전 대표와 얼마나 소통을 해낼지는 미지수다. 김 의원에 대한 박 전 대표의 마음이 아직 풀린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친박 성향의 의원 중 김 의원에 대해 “도리가 아니다”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계파별 입장이 부딪히는 사안에서 김 의원이 이를 잘 조율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많다. 한 친박 의원은 “김무성 카드는 여권 주류에서 만든 것 아니냐”며 “결과적으로 친박 진영을 분열시키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김 의원은 원내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하며 “분명한 것은 정권을 같이 잡았다는 점이며, 앞으로 주류·비주류의 벽을 허물겠다”고 밝힌 바 있다.그는 기자에게 계파별 화합에 대해 “엄정한 중립을 지키겠다. 국민이 원하는 방향을 설정해 놓고 그것을 위해 설득할 것”이라고 말했다.당내에서 김 의원이 원내대표로 적합한 이유로 꼽는 다른 이유는 대야 협상력이다. 후반기 국회에선 개헌, 선거구제 개편 등 정권 차원의 핵심 이슈를 다뤄야 한다. 김 의원이 오랜 여의도 경륜을 바탕으로 대야 관계에서도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많다. 그는 기자에게 협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정치는 자기 양보다. 나는 어디 가서 싸운 적이 없다. 양보하면 된다. 하지만 일방적인 양보는 안 된다. 그래서 파트너가 중요하다. 그 사이에는 신뢰가 있어야 한다. 과거 우리 정치사를 보면 원내총무(원내대표의 예전 직위)가 상대 당과 협상을 해오면 좀 성에 안 차더라도 당에서 추인해주는 일이 있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정치판에 그런 게 사라졌다. 정치의 기본은 국민을 앞에 두고 상대 당과 타협과 협상을 하는 거다. 절충안을 만들어가는 거 말이다. 선거에 나가서 유권자들을 만나면 10명 중 8명은 싸우지 말라고 한다. 정치는 싸우지 말고 타협하고 절충해야 한다.”

김부겸·강봉균 단일화 성사가 변수
7일로 다가온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후보 간 경쟁이 치열하다. 당 핵심 관계자는 “이번 경선은 어느 때보다 당선자를 점치기가 어렵다”며 “정말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후보 등록 전에만 해도 김부겸(3선·군포)·박지원(재선·목포) 의원의 양자 싸움이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석현(4선·안양 동안갑)·박병석(3선·대전 서갑)·강봉균(3선·군산) 의원 등이 후보군에 가세하면서 계파의 이해와 당의 진로 등 함수관계가 복잡해졌다.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 방식은 1차 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후보가 없으면 1위와 2위가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된다. 현재 판세로선 1차에서 과반수 후보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이럴 경우 1, 2위 후보가 결선 투표를 치러야 하는데 여기서 결선에 오르지 못한 후보의 지지표가 어디로 움직일지 예상키 어렵다. 현재 후보들 중 강봉균·김부겸 의원은 단일화 협상이 진행 중이다. 경선 전까지 협상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어서 이 역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경선의 특징은 당내 비주류 인사들의 출마가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석현 의원은 ‘쇄신모임’ 공동 대표이고 김부겸·강봉균·박병석 의원도 꾸준히 이 모임에 참석하고 있다. 쇄신모임은 정세균 대표를 견제하는 비당권파 의원들의 모임이다. 박지원 의원도 한 차례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쇄신모임에는 30명 이상의 의원이 참여하고 있다. 쇄신모임 한 관계자는 “당 주류에 대한 반감이 그만큼 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당직자는 “후보들이 그 모임에 참석하는 것은 표를 얻기 위한 것이지 당내 불만은 아니다”고 반박했다.
협상의 정치를 내세우는 김무성 의원과 민주당 후보들의 관계는 어떨까. 실제 김 의원은 민주당의 다섯 후보와 모두 가까운 사이다. 김 의원은 1980년대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민주화 투쟁에 동참하면서 정치를 시작했다. 정당 생활은 87년 통일민주당 창당 발기인으로 출발했고 15대 총선에서 여의도에 입성했다. 오랜 경험 덕인지 민주당 후보들과 모두 과거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한나라당이 김 의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키로 하자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실종됐던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복원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란 논평을 냈다. 민주당에서도 그에게 거는 기대가 있다는 얘기다.
이석현 의원과 김 의원은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동기다. 80년대 YS가 이끌던 상도동계와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는 민추협을 만들어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다. 선수도 같은 4선이다. 이 의원은 “정치력을 살리는 좋은 파트너가 될 것”이라고 했다. 김 의원도 “서로 알고 지낸 지가 가장 오래된 사이”라고 했다.
강봉균 의원과 김 의원은 YS 정부 시절 김 의원이 내무부 차관을 맡았을 때 국무조정실의 전신인 행정조정실장으로 처음 만났다. 강 의원도 “서로를 잘 알기 때문에 불필요한 기싸움 없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김 의원은 “중요한 문제를 서로 상의하곤 했다”고 기억했다.
김부겸 의원과 김 의원도 민추협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 16대 국회 땐 한나라당에 함께 있었다. 김부겸 의원은 “서로 말이 잘 통하는 사이라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무성 의원도 김 의원을 “정치를 아는 의원”이라고 했다. 박병석 의원과 김 의원은 박 의원이 정치에 입문하기 전, 기자(중앙일보)와 취재원으로 만나 인연을 이어왔다. 17대 국회에선 재경위원으로 함께 활동했다. 박 의원은 “김 의원은 융통성 있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김 의원도 “정치권에 몇몇이 모이는 토끼띠 모임이 있는데 같은 멤버”라고 소개했다.
박지원 의원은 90년대 초 민주당 대변인 시절부터 김 의원과 아는 사이다. 두 사람은 각각 DJ와 YS를 지근 거리에서 보좌해온 경력이 있다. 정치와 권력의 생리를 잘 아는 정치인으로 불린다. 박 의원은 “실종된 정치를 다시 살리는 데 최적의 조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형님 동생’ 하는 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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