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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와 토론은 공부에 보약, 리더십은 인생에 보약"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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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호 14면

케빈 리는 “교육에 샛길은 없어요. ‘SAT는 몇 점이라야 하버드대 안정권일까요’ ‘자원봉사는 몇 시간 해야 인정받나요’ 같은 단기적 접근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LA 지사=백종춘 기자

'재미동포 여고생이 미국 대학수능시험(SAT)에서 2400점 만점을 받았다. 코네티컷주의 루미스 채피스쿨 11학년에 다니는 이예담양은 지난달 치러진 SAT에 처음 응시해 만점을 받았다.'(연합뉴스 4월 2일)한국의 고교생 중에도 SAT 만점을 받은 학생이 여럿이니 만점 자체는 큰 뉴스가 아니다. 하지만 ‘만점 딸’을 둔 아버지가 미국교육 컨설턴트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양의 아버지 케빈 리(45·한국명 이경훈)는 미국 대학 진학 전략을 조언하고 SAT 대비를 위한 학습법을 강연하는 컨설턴트다.

‘SAT 만점 딸’ 키운 재미 교육컨설턴트 케빈 리의 자녀교육 비법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온 이씨는 95년 한국을 떠나 중국·캐나다 생활을 거쳐 2000년 미국에 정착했다. 한국에서는 경제·경영서를 내고 산업교육 강사로 일했다. 캐나다와 미국에서는 마케팅과 홍보 관련 일도 했다. 그러다 2002년 교민을 대상으로 한 미주교육신문을 창간했다. 한인 신문에 교육 칼럼을 기고하고 한인 방송에서 고정 프로그램을 맡기도 했다.그는 2003년엔 '미국 대학 알고 나면, 어디든 갈 수 있다'(중앙일보사)를 펴냈다. 2007년부터 1년간 중앙일보 교육섹션에 ‘케빈 리의 미국유학 통신’을 연재했다. 전화와 e-메일을 통한 인터뷰에서 그에게 ‘공부의 신’이 되는 비법을 들어봤다.

-전공과 이력은 교육과 무관합니다.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나요.
“2000년 미국에 와서 보니 한국인 부모들의 교육열은 높은데, 필요한 정보가 흩어져 있어 자녀 교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더라고요. 일단 교육 정보를 모아야겠다고 생각해 미주교육신문을 창간했습니다. 그러면서 한인 사회가 익숙하지 않던 토론(debate)과 수학경시대회인 AMC를 통한 공부법을 열심히 알렸죠.”

-영어는 토론(debate), 수학은 AMC라고 강조하셨는데요.
“인문계와 이공계로 나눠 보죠. 인문계의 공부는 풍부한 독서와 비판적 재해석 능력이 중요합니다. 매주 다른 주제로 토론하면 폭넓은 자료를 접하게 되고, 읽기 능력이 향상돼요. 당연히 넓은 시각이 생기고 아이들이 뉴스도 재미있게 보게 되죠. 이런 능력이 차곡차곡 쌓이면 성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많이 읽고 생각하다 보면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자연스럽게 에세이를 쓰는 것도 준비되는 거예요. 이공계 공부의 기본은 수학입니다. 그렇다고 반복 문제 풀이로는 실력이 늘지 않아요. AMC는 미국의 대표적인 수학경시대회예요. 하지만 단순한 문제를 출제하지 않죠. 복합적으로 사고할 때 가능한 문제 해결능력을 요구합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주입식 교육이나 점수 올리기 교육과는 차이가 있어요. 어떤 한인 학원에서는 AMC의 유형을 분류하고 푸는 법을 가르치기도 하더라고요. 시험의 의도를 왜곡한 거죠. MIT(매사추세츠 공과대학)나 칼텍(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입학원서엔 AMC 성적을 기입하는 칸이 있습니다.”

-딸의 공부도 직접 챙겼나요.
“5학년 때부터 토론을 시켰어요. 격주로 한 가지씩 주제를 정했는데 4년을 하니 100가지 주제가 되더군요. 환경·법률·범죄·교육·가족·정치·군사… 모든 문제가 포함돼요. 다행히 딸아이가 독서를 매우 좋아해요. '해리포터'는 얼마나 읽었는지 외우더라고요. 뻔한 소리 같지만 역시 독서가 모든 공부의 기본인가 봅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한국의 학원을 다니기 위해 여름방학에 귀국하기도 하죠. 이걸 한국 사교육의 경쟁력으로 봐야 할까요.
“한국 사교육이 시험 과목을 분석하고, 풀이 방법을 제시하는데 특별한 강점은 있는 것 같습니다. 학원들이 학생 관리 능력도 지니고 있고요. 이에 비하면 미국의 사교육은 느슨하고, 여기에 불만 있는 학생들이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는 거겠죠. 하지만 대부분 유학생들입니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학생들이 SAT 학원을 위해 한국에 간다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어요.”

-한국 부모들은 지나치게 ‘명문대’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한국과 미국의 기준이 달라요. 미국에서는 전공 관련성, 재정 지원, 학교 분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학교를 선택합니다. 반면 한국의 기준은 단 하나, 한국의 평판이에요. 바람직하지 않은 기준이라고 봐요.”

-한국 학생들은 명문대 졸업까지는 잘하는데 사회에서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합니다. 대학에 들어간 학생을 위한 컨설팅을 해주신다면요.
“미국 교육에서는 학생 본인의 독립성, 커뮤니케이션 능력, 적극성이 필요해요. 그 때문에 부모가 끌고 다니면서 공부시킨 자녀는 힘듭니다. 부모에게 의존해 공부한 학생들은 이런 능력이 많이 떨어지거든요. 스스로 동기를 갖고 공부 계획을 짜고, 수행하면서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서 발전시키는 능력을 키워야죠. 부모들도 자녀를 지도할 때 대입만 염두에 두지 말고, 인생에 필요한 능력과 인성을 갖추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리더십도 중요합니다. 미국 교육에서는 머리 좋은 사람이 잇속만 챙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분명합니다. 리더십도 자꾸 하면 늡니다. 그래야 대학 이후에도 잘 살아갈 수 있어요. 저 역시 한국에서 자란 사람이라 쉽지는 않았습니다.”

-한국에서 SAT 시험 부정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어요.
“SAT뿐이 아닙니다. GRE나 SSAT 등 다른 시험에서도 한국의 신뢰도가 많이 떨어졌어요. 이런 문제에 대해 한국 사회가 좀 더 단호할 필요가 있습니다.”

-학부모들을 많이 만나실 텐데요.
“부모들은 자기가 보고 배운 대로 자식을 가르치는 것 같아요. 미국에 이민 온 한인 부모들은 한국에서처럼 자녀들을 가르치는 거죠. 아버지는 돈 벌고, 어머니는 사교육 계획을 짜는 식이에요. 투자 대비 결과가 좋지 않을 수밖에요. 일단 부모 스스로 교육관을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유대인들의 교육론이 시사하는 바가 많죠. 그들은 정체성 교육, 부모가 직접 선생님이 되는 교육, 토론교육이라는 세 가지 방법으로 세계 최고의 교육 효과를 얻었어요.”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당연한 얘기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교육이에요.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죠. 그 다음이 세상을 비판적이고 논리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겁니다. 그래야 어느 공부를 하든 똑똑한 학생이 되는 거죠. 이후에 구체적인 전공을 정하는 게 순서죠.”

-‘공부의 신’이 되는 왕도가 있다면요.
“지식을 사랑하고, 비판적으로 재해석하는 능력. 이것이면 모든 공부가 쉬워집니다.”

마지막 질문까지 답한 그가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고 했다.
“제 모든 이야기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SAT 2400점이 무언가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SAT 점수는 그저 미국 대학 입학 지원에 필요한 한 가지 요소에 불과합니다. 만점을 받고도 하버드대에 떨어지는 학생도 많아요. 만점이 목표가 돼선 곤란합니다. 공부를 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 제가 얘기하는 것도 참고사항으로 여기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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