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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나무 vs 대만 소나무 vs 일본 매화 ‘3색 대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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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호 16면

골프 여제 로레나 오초아(멕시코)가 3일(한국시간) 멕시코 모렐리아에서 끝나는 LPGA 투어 트레스 마리아스 챔피언십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 골프 실력도 좋았고 코스 안팎에서의 좋은 매너로 ‘천사’로 불리던 오초아는 ‘골프의 성인’ 바비 존스처럼 정상에서 물러났다. 오초아는 존스처럼 만 28세의 나이에 은퇴하게 됐다. LPGA 투어 커미셔너인 마이크 완은 오초아를 만나 은퇴 번복을 설득했다. 그러나 오초아는 적어도 올해 안에는 은퇴를 번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 침체와 미국 스타 부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LPGA 투어의 고통은 조금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선수들도 혼란하다. 158주 동안 세계랭킹 1위를 지키던 오초아의 은퇴로 LPGA 투어엔 권력의 진공상태가 생기게 됐다. 그러나 영웅은 난세에 나온다. 이 혼란 속에서 새로운 여제가 탄생할 것이다.

오초아 빠진 LPGA , 새 여제 노리는 동양의 보석들

유력 후보는 신지애, 청야니(대만), 미야자토 아이(일본)다. 세 선수는 모두 아시아 선수로 LPGA 투어의 세한삼우(歲寒三友)라고 할 만하다. 한겨울의 풍상 속에도 푸르른 대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눈 속에서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처럼 LPGA 투어에 봄이 멀지 않았음을 알려 줄 동양의 보석들이다. 이들의 경쟁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게임이 될 것이다.

신지애는 1일 현재 세계랭킹 2위다. 오초아가 공식적으로 클럽을 놓는 3일엔 현역 선수 중 1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신지애가 여제 대관식을 하게 된다는 보장은 없다. 랭킹 3위 청야니(세계랭킹 포인트 8.42)와 신지애(8.46)의 차이는 0.04점에 불과하다. 4위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8.46), 5위 미야자토 아이(8.19)도 아주 가깝게 추격하고 있다.

샷의 퀄리티로 보면 LPGA의 주인공은 아시아 3국의 대표선수들이 아니다. 랭킹 4위 페테르센이 제일 뛰어나다. 페테르센은 올해 개막전에서 준우승을 했고 이후 3위, 52위를 했다.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도 1타 차 준우승했다. 평균 타수 1위에, 상금 3위다. 모든 부문에서 고루 뛰어난 그의 통계 수치로 보면 오초아를 잇는 골프 여제가 되기에 가장 적합해 보인다. 그러나 숫자는 모든 것을 말해주지 못한다. 바비 존스는 “골프 코스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두 귀 사이”라고 말했다. 두 귀 사이는 뇌, 즉 멘털을 의미한다.

여제가 되려면 끝내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에서 ‘파이널 퀸’이라는 명성을 얻은 신지애처럼 마지막 라운드에 강해야 한다. 페테르센은 올 시즌 3개 대회에서 우승경쟁을 했는데 그 중 2개 이상 우승을 했어야 했다. 페테르센은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도 지난 4년간 준우승만 3번 했다. 세한삼우는 그렇지 않다.

신지애는 대나무다. 어머니의 교통사고라는 러프 속에서도 밝은 태양을 바라보며 곧게 자랐다. 성격이 밝고 자신을 믿는다. 샷도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똑바르다. 5번 우드를 쳐도 서양 선수가 피칭 웨지를 치는 것 이상으로 정교하다. KIA 클래식 1, 2라운드에서 신지애는 미셸 위와 동반 라운드했다. 미셸 위의 드라이브 샷 감이 매우 좋았다. 미셸 위와 신지애의 티샷은 50야드 가량 차이가 났다.

파 4홀에서 미셸 위의 두번째 샷이 130야드가 남았다면 신지애는 180야드 이상을 쳐야 했다. 세컨드샷을 기준으로 볼 때 미셸 위는 레이디 티에서, 신지애는 화이트 티에서 치는 격이었다. 미셸 위는 웨지 혹은 9번 아이언, 신지애는 하이브리드나 우드로 샷을 했다. 그래도 신지애의 그린 적중률이 더 높았다. 신지애는 시즌 개막전에서 22위에 그쳤다. 퍼팅이 잘 안됐다고 했다. HSBC 챔피언십에서 3위, KIA클래식에서 3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5위를 했다. 실수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신지애의 퍼팅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당할 선수가 없다.

청야니는 선이 굵다. 소나무 같다. 남자 같은 스윙을 하고 장타를 친다. 웨지 샷에는 강한 스핀이 걸린다. 3승 중 메이저에서 2승을 거둘 정도로 큰 판에 강하다. 그가 팬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4년 US 여자 아마추어 퍼블릭 링크스 결승에서다. 청야니는 거물을 꺾고 우승했다. 미셸 위다. 그 해 미셸 위는 PGA 투어 소니오픈에서 68타를 치고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청야니가 꺾었다. 두 선수는 1989년생 동갑이다.
청야니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땄다.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리스트는 한국의 유소연이었다. 아시안게임 직후인 2007년 초 청야니는 프로로 전향했다. 미니 투어 비슷하던 아시안투어 서킷에서 기량을 닦았다. 박희영, 지은희 등 한국 선수들과 경쟁했다. 샷이 정교하지 못해 한국 선수를 이기지 못했다.

2008년 LPGA 투어에 들어와서는 기량이 급성장했다. 버디를 388개나 잡았다. LPGA 투어에서 가장 많았다. 메이저대회인 LPGA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다. 평균 타수 4위에 상금랭킹 3위에 올랐다. 당연히 신인왕이었다. 그러나 약점도 있었다. 2위를 5번이나 했는데 대부분 역전패였다.

2009년에도 여전히 잘 쳤다. 톱 10에 14번 들었다. 그러나 우승은 단 한차례였다. 올해 반전이 일어난 것 같다. 그는 시즌 첫 2경기에서 연속 3위를 기록했고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역전 우승했다. 그가 바뀐 계기는 안니카 소렌스탐의 집이다. 지난해 4월 청야니는 올랜도에 있는 소렌스탐의 집을 샀다. 청야니는 어려서부터 소렌스탐을 우상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집을 사는 ‘갑’의 입장이면서도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청야니에게 소렌스탐이 친언니처럼 다정하게 대해줬다. 현재 둘은 가장 친하다.

소렌스탐의 집 터가 좋아서 청야니의 실력이 향상된 것은 아니다. 청야니는 “소렌스탐이 멘털 게임에 대해 많은 조언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청야니는 소렌스탐이 살던 집으로 이사하면서 커다란 목표를 세웠다. 소렌스탐의 우승 트로피를 보관하던 거대한 방을 채우는 것이다. 이제 LPGA 투어 3승을 거둔 청야니가 소렌스탐의 72승에 도달하려면 멀고 먼 길을 가야 한다. 그러나 청야니는 “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집에 트로피룸 말고도 그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있다. 수영장이다. 청야니는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 세리모니를 할 때 머뭇거렸다. 캐디에게 “나는 수영을 못하니 보호해달라”고 부탁한 후 물에 뛰어들었다. 청야니는 “소렌스탐에 산 집에 수영장이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 수영을 배워 앞으로는 걱정 없이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쇼트게임, 롱게임, 멘털, 퍼팅 코치를 두고 있다.

청야니는 대만의 박세리다. 중국 고위 관료들은 2016년 시작되는 올림픽 골프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청야니를 스카우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기업에게 그를 지원하고 중국으로 국적을 바꾸도록 설득하라고 지시했다. 전용기를 대주는 등의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나 청야니는 거부했다. 선산을 지키는 굽은 소나무처럼 그는 조국 대만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청야니는 “대만 골프의 역사를 쓰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미야자토 아이는 매화다.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매화처럼 올 시즌 가장 먼저 우승했다. 꽃처럼 화려하게 자라기도 했다. 일본은 한 분야에서 뛰어난 퍼포먼스를 보이는 장인(丈人)을 대우한다. 가문이 좋으면 두 배 세 배 숭배한다. 미야자토는 집안이 좋다. 아버지 미야자토 유는 오키나와의 티칭 프로다. 오빠도 일본 프로골프 선수로 뛰고 있다.

미야자토는 4세 때 골프를 시작했다. 오빠들도 골프를 잘 했지만 미야자토 아이가 가장 뛰어났다. 그는 도호쿠(東北) 고교에 다니던 2003년 JLPGA투어 던롭여자오픈에서 우승했다. 주니어 선수가 JLPGA에서 우승한 건 30년 만이었다. 프로로 전향한 미야자토는 데뷔 첫 해만 4승을 했고 2005년 그는 여자월드컵골프에 출전해 일본에 우승을 안겼다.

일본 투어에서 활약할 때 그는 요코미네 사쿠라와 많은 비교가 됐다. 요코미네도 미야자토 못지 않게 잘 했다. 작은 키로 장타를 치는 요코미네를 좋아하는 팬도 많았다. 그러나 집안은 미야자토 가문만 못했다. 미야자토는 주류가 좋아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였고 요코미네는 반골들이 좋아하는 한신 타이거스였다.

골프 선수들은 “태국 등 남방계 골퍼들이 덩치가 작은 대신 손감각이 매우 뛰어나다”고 한다. 통차이 자이디나 프라야 막생의 쇼트게임은 귀신같다. 타이거 우즈가 쇼트게임이 좋은 것은 태국인 어머니를 둔 덕이라는 말도 나온다. 미야자토의 고향인 오키나와도 남방계에 가깝다. 미야자토의 생김새도 그렇다. 미야자토 아이는 아이언샷이 좋고 그린과 그린 주위에서 매우 화려한 경기를 한다. 2005년 LPGA 진출을 선언한 미야자토는 퀄리파잉 스쿨을 수석으로 통과했다. 2위와 12타 차가 났다. 그러나 신인이던 2006년 우승 없이 상금랭킹은 22위에 머물렀다. 안니카 소렌스탐에게도 이겨주기를 바라는 일본 팬들의 기대가 미야자토 아이를 눌렀다. 2008년엔 상금랭킹 46위까지 떨어졌다. 목표를 잃은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우승하면서 미야자토는 사무라이 같던 과거의 정신을 되찾았다. 지난해 상금랭킹 3위로 올라섰고 올 시즌 개막 후 2개 대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개막전 마지막 라운드에서 63타를 치며 페테르센에 역전 우승을 하는 모습은 팬들과 동료들에게 강한 인상을 줬다. 신지애처럼 마지막 라운드에서 다른 선수에 강한 압박감을 줄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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