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영빈 칼럼

왜 지성의 위기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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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사방에서 노무현 정권과 노 대통령을 비난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택시 운전사부터 대기업 사장에 이르기까지, 시장의 아낙네부터 대학 교수에 이르기까지 입 달린 사람치고 이 정권과 대통령을 비판하지 않고선 대화가 되지 않는다. 가위 사면초가(四面楚歌) 아닌 '사면노가(四面盧歌)'의 궁지다. 어째서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지식인 상당수가 이를 이 정권의 반(反)지성 독선주의 탓으로 보고 있다. "나와 너, 우리와 그들을 이분법으로 분리해놓고 서로 싸우면 우리의 미래는 절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고 원로 작가 박경리씨는 최근 서울대 특강에서 생각이 다른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오늘의 풍토를 개탄한다.

*** 균형·이성·지성이 없는 풍토

서울대 법대 안경환 교수는 지금 한국에선 균형과 이성, 교양.지성을 찾기 어렵게 됐다고 말한다. 남한에 정의로운 사회가 건설되지 못하는 이유를 광복 직후 친일파 숙청이 이뤄지지 않은 탓으로 보는 젊은 학자가 있는가 하면, 기업의 존립 이유에 명문대 학생 80%가 부의 사회 환원이라고 답하는, 수많은 논리적 단계를 생략한 채 곧바로 이상적 결론에 이르는 이들의 직선적 사고에 무서움을 느낀다고 탄식하고 있다. 세속의 권력으로 다른 힘을 꺾기 위한 현란한 구호의 역사 바로 세우기는 거짓과 왜곡으로 가기 쉽고 우리의 눈이 과거에 고정돼 있는 한 미래를 향해 달릴 수 없다고 강조한다. 때문에 잊을 것은 잊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며 용서할 것은 용서하자는 결론을 내린다(당대비평 가을호 '기억과 용서').

러시아대사를 지낸 이인호 교수는 이 시대의 사회적 불안요인을 지성의 위기로 파악한다. 이 교수는 우리의 지성사적 비극의 뿌리를 100년 역사를 통해 분석한다. 일제강점기 항일 지사와 지식인이 따로 노는 상황에서 상당수 지식인은 마르크스 레닌주의와 기독교를 복음으로 받아들이는 기형적 지식인이 된다. 광복 후 서울과 평양을 눈치보며 정파적 대립을 하게 되고 군사독재 시절엔 저항파와 방관파로 나뉘면서, 특히 광주항쟁 이후는 두 진영이 서로가 건널 수 없는 적대적 관계에 들어가게 된다.

이런 지적 풍토에서 386세대들은, 기존 정치세력의 부패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했을 때 인터넷세대들의 감성적 반미주의와 반엘리트주의 정서에 호소함으로써 정권 창출에 성공했다. 이들이 개혁.평등.동포애 등 추상적 명분을 앞세운 극단적 이기주의와 독선으로 이성적 대화의 가능성을 봉쇄하기 때문에 국정은 분열증세를 보이고 사회 분위기는 피폐하고 각박해졌다는 것이다('지성의 위기와 그 역사적 배경'10월 29일 서울대 교수협의회 토론회).

이 정권이 일방적 독선주의로 상대를 부도덕한 존재로 보고, 현실보다는 이상에, 오늘의 삶보다는 어제의 유무죄에, 이성적 판단보다는 도덕적 원리주의에 집착하기 때문에 국론은 분열되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지 못한다고 상당수 지식인은 보고 있다. 이 반지성적 풍토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나는 먼저 '광주 원죄'에서 서로가 해방되기를 바란다. 광주항쟁 당시 너는 무엇을 했느냐로 상대를 저울질하고 편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않고선 지성의 풍토가 개선될 수 없다. 한림대 전상인 교수가 지적했듯, '1980년 광주'에 대한 역사적 부채의식이 지식사회를 압박하고 진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386 정서가 성역화되는 풍토를 서로가 방치했다고 볼 수 있다.

*** 386정서로 오늘을 재단말라

386 정서가 정치 세력화한 지금 그들 사고와 정서가 법안으로 표출된 게 이른바 4대 개혁법안일 것이다. 이들 법안 통과에 정권이 올인하는 한 우리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결코 치유될 수 없다고 본다. 이 법안이 지닌 도덕적.이상적 목표에도 불구하고 그 추진 방식이 일방적.반지성적이기 때문이다. 이들 법안의 문제점과 대안 모색에 대해선 그동안 숱하게 언급했으니 그만두자. 다만 이 정권이 왜 이토록 소모적인 법안에 연연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중동.사학재단.친일파.국가보안법은 386 당시의 대학생으로선 적이고 원수였을 수 있다. 그들이 정권을 장악한 지금도 당시의 잣대로 오늘을 재단하고 현세의 권력으로 이 모두를 사갈시(蛇蝎視).적대시하는 것 아닌가.

과거 피해자였던 이 정권이 앞장서 이 모두를 끌어안아야 통합과 상생의 지혜가 나오고 지성적 풍토가 살아날 수 있다. 여당의 이부영 의장이 말했듯 높은 산은 돌아가고 깊은 강은 얕은 곳을 찾아 건너는 유연성의 지혜를 보여야 새로운 앞날을 열 수 있다.

권영빈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