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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1년 동안 쇼핑을 끊었다, 사람이 아주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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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굿바이 쇼핑
주디스 러바인 지음
곽미경 옮김
좋은생각
380쪽, 1만5000원

“나는 쇼핑한다, 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

미국의 아티스트 바버라 크루거가 한 말을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쇼핑하면서 충만한 존재감을 느껴본 사람이 어디 한 둘일까. 2003년 12월 미국 뉴욕, 크리스마스 쇼핑으로 2주 만에 1000달러를 쓴 주디스 러바인. 실수로 물웅덩이에 쇼핑백을 쏟은 그녀는 쭈그리고 앉아 그의 어깨를 후려치고 지나가는 쇼핑백의 행진을 보며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런 것이 자유야?” 그리고는 2004년 1월 1일부터 “아무 것도 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책은 전업 작가인 러바인이 ‘아무것도 사지 않는 1년’ 프로젝트의 기록이다. 아무것도 사지 않는 게 아니라 생계와 건강, 업무를 위한 용도가 아닌 것은 사지 않는 것이다. 컨설턴트인 남자친구 폴과 함께 프로젝트에 앞서 실시한 ‘재고 조사’는 그들이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줬다. 정장·캐주얼·스키·걷기 등 용도별 신발만 12켤레였고, 읽지 않은 책과 거의 듣지 않는 CD와 찬장에 쌓인 그릇, 사무용품은 ‘필요 이상’이었다.

현대인의 소비욕, 그것도 사회적으로 주입되는 것은 아닐까? [김도훈 인턴기자]

아무것도 사지 않기로 한 지 한 달 만에 달라 보이는 것은 ‘집’이었다. 두 사람이 생각보다 큰 집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미국인들이 주택만 해도 ‘집단 비만’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아무 것도 사지 않는 삶’은 쉽지 않았다. 군것질의 유혹을 참기 쉽지 않았고, 카페에 앉아 느긋하게 보내는 시간을 그리워했다. 또 술 마시며 느끼던 흥겨움을 잃었고 친한 친구들과도 멀어지는 느낌이었다.

저자가 단순히 ‘비(非)소비 생활’을 기록하는 데 주력했다면 책은 반쪽의 의미도 찾기 어려웠을 터다. 하지만 저자는 현대인의 소비행위를 주제로 끈질기게 질문하고 답을 찾는 성찰의 과정을 함께 기록했다. 쇼핑은 “더 많은 행복과 더 많은 아름다움,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재미를 바라보는 희망연습”이긴 하지만 그 효과가 일시적이고, 와인이나 커피를 나누는 것은 ‘거래의 윤활제’ 라는 사실도 인정하게 됐다. 그는 또 필수품과 사치품을 구분하며 두루마리와 크리넥스, 고속버스와 기차의 선택을 놓고 벌이는 개인적 갈등을 넘어서 ‘자발적 빈곤을 위한 모임’에 직접 들어가고, 소비의 대가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부터 공공선·소비조합 그리고 부의 재분배 문제에까지 생각의 폭을 넓혀 나간다.

저자는 ‘사지 않는’ 경험을 통해 “열반을 얻었으면서도 동시에 졸로프트(우울증 치료제)를 갈망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도 보상도 컸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 것이다. 자신이 무엇을 사는 행위가 세계의 자원과 사람들에게 미치게 될 잠정적인 영향을 생각하게 됐다. 사회가 소비자의 역할만 강조하는 사이에 도서관·학교·다리 등 공공자산이 형편없어지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책은 필수품일까, 사치품일까. 프로젝트를 시행할 동안 저자는 도서관에서 구할 수 없는 책만 서점에서 구입했는데, 이 책의 편집자로부터 이런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책은 사봐야죠, 주디스.”

글=이은주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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