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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영화 25편에 얽힌 동서양 술맛…음주계 30년 내공의‘취기 독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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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술꾼의 품격
임범 지음, 씨네21북스
228쪽, 1만2000원

술꾼에게 술 마시는 까닭을 묻는 건 부질없는 짓이라 할 수 있다. 대신 술을 좀 알고 마시자는 말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2년 전 중앙SUNDAY 매거진에 ‘씨네 알코올’이란 제목으로 영화 속에 나타난 술 얘기를 연재할 때 소회를 지은이는 마누라에 비유했다. “그렇게 즐겨 마시던 술에 대해 이렇게 몰랐다니. 수년간 살을 섞어온 여자의 가족 관계, 혈액형 따위를 모르고 있었던 것과 같은 미안함과 궁금함이 뒤늦게 밀려왔다.”

그리하여 자칭 애주가로서 통탄하면서 술을 공부해가며 마신 결과가 이 책이다. 25편 영화에 등장한 동서고금의 술맛이 읽는 것만으로도 코와 혀를 자극하며 알싸하게 취기를 돌게 한다. 가히 ‘음주 독서’라 할 만하다.

“가끔씩 과잉이 그리울 때가 있다. (…) 낭만적인 것들의 과잉! 영화는 그리로 가지 못하지만, 마가리타의 맛에는 그 과잉이 있다.”(마가리타와 ‘마타도어’-테킬라의 키치, 낭만의 과잉)

한국 풍토에서 폭탄주에 대한 언급이 빠지면 섭섭할 터. 가히 ‘폭탄주의 사회사’라 할 만한 흥미진진한 분석이 이어지는데 글쓴이 본인의 풍부한 경험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를테면 이런 표현, “폭탄주는 말이 그리울 때보다, 말에 지쳤을 때 마시는 게 좋다”는 구절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글 한 편이 끝날 때마다 여러 가지 술 제조법과 품평이 딸린 팁(Tip)이 붙어 있는데 음주계(飮酒界)에 몸담은 지 30년이 넘는 내공이 절로 빛을 발한다. 맥주 칵테일 ‘에스프레소 콘 비라’, 손쉽게 만드는 ‘임범 표 보드카 칵테일’ 등 책을 잠시 제쳐두고 컬컬해진 목을 축일 수 있는 술냄새가 물씬하다.

언론인 심연섭(1923~77)은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적으로 술을 마신 사연을 『술 멋 맛』이란 한 권의 책으로 남겼는데 ‘국주(國酒)’를 자임했던 그는 술 끊는 이들에게 이런 노래 한 구절을 읊어주곤 했단다. ‘난 마셔요, 그럼요. 난 살았거든요. 안 마시는 분들도 있지요. 그래서 그들은 죽어간답니다.’ 이 대선배의 경지까지는 아직 못 미친다 해도 술과 영화를 섞는 그의 배합술은 사람을 흔쾌히 취하게 한다.

왜 증류된 독주를 영어로 ‘스피릿(spirit)’, 즉 영혼이라고 부를까. 이 답을 어떻게 하느냐에 술꾼의 품격이 있다.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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