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영화배우 안성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영화 '흑수선' 촬영으로 바쁜 요즘, 그나마 추석 연휴 덕분에 오랫동안 미뤄놓은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도서관 콘텐츠 확충과 책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본부' 의 홍보 포스터를 지난 일요일 찍은 것이다. 영화 외의 사회활동은 유니세프쪽 일만 조금 돕고 있는데, 이번 일은 그 취지가 워낙 좋아 요청을 흔쾌히 승낙했었다.

책의 재미를 발견한 건 군대 시절이다. 1974년부터 2년간 강원도 금화지역의 산꼭대기 OP(전방관측초소)에서 복무하면서 경계근무 틈틈이 여유가 좀 있었다. 마침 당시는 문고판의 전성기였다.

김동인.염상섭 등 우리나라 작가들의 단편소설부터 카뮈.사르트르의 장편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독파하기 시작했다. 김승옥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을 읽은 것도 그 무렵이다. 사관학교를 지원했다가 실패한 '나' 와 부잣집 아들인 대학원생 '안' , 그리고 아내의 시체를 팔고 죄책감에 시달리다 결국 자살하고 마는 '아저씨' 등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그의 문학세계에 나도 모르게 빨려 들어갔다.

또 최인훈의 소설 『광장』을 읽으며 조국을 등질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의 입장에 공감했었는데, 지금도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흑백논리 속에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서 그 작품을 떠올리곤 한다.

아무래도 내 감성엔 소설이 맞는 것 같다. 영화일과도 관련이 많다. 영화 '고래사냥' 등을 찍으며 인연을 맺은 원작자 최인호씨와는 호형호제하며 지낸다. 최근에 나온 그의 소설 『상도』(여백미디어)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후배들에게 특히 단편소설들을 많이 읽어보도록 권하는데, 기승전결의 구도가 명확해 시나리오를 보는 안목을 길러주기 때문이다. 나 역시 문학사상사에서 나오는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은 매년 빠짐없이 찾아 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책 읽는 시간이 줄고 있다. 그래도 이번 홍보사진이 잘 나와 우리 사회에 독서바람을 일으키는데 작은 보탬이 됐으면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