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무라카미 라디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흥미있는 것만을 맘대로 썼다' .에세이집 『무라카미 라디오』의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사진)는 후기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상실의 시대』등의 소설로 국내에도 두터운 팬층이 있는 스타 소설가 하루키의 이 에세이집은 젊은 여성 취향의 일본 잡지 'anan' 에 1년여 동안 연재한 50여 편의 짧은 글을 묶은 책이다. 그는 이 에세이에서 취향 혹은 기호품과 관련된 얘기를 하고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소비와 존재의 관계 탐구쯤 되겠지만, 그의 말대로 흥미있는 것을 마음대로 쓴 글에 이런 평을 하는 일도 부질없는 짓이다.

그의 소설에서도 확인되듯, 대중가요를 듣고 영화를 보고 음식을 먹는 일은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그의 사유의 동력원이다. 그런면에서 무라카미의 소설을 즐겨 읽던 독자라면 자기 고백적인 이 에세이집을 통해 무라카미의 일상과 생각하는 방식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듯하다.

주제 하나마다 정확히 3페이지인 이 책을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그냥 눈길가는 것 먼저 읽어도, 하루키의 특징은 글 전체에 일관되게 녹아있으니까.

무라카미 글의 특징은 상식 체계의 허위와 가식을 질타해 사유의 지평을 한층 밝혀주는 에세이의 본류와 달리, 욕망의 파도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그대로 맡긴다는 점에 있다.

예를 들어 '파스타라도 삶아라!' 의 경우 이탈리아에서의 살벌한 운전 체험과 관련한 얘기로 시작한다. 느릿느릿 가던 한 주부 운전자에게 남성 운전자가 "집에 가서 파스타나 삶아" 라고 모욕을 준다. 일본이었다면 "무나 삶아" 쯤 됐을 것이며 모욕당한 사람의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를 얘기하다 돌연, 무라카미는 그의 욕망으로 튄다.

"파스타나 삶아" 라는 모욕적 언사에서 무라카미의 생각은 "이탈리아 파스타는 정말 맛있다!" 라는데 미친다. 그리고 그 파스타의 맛은 이탈리아 밖에서는 맛볼 수 없으며 음식이란 결국 공기탓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한마디로 튄다.

대부분의 다른 글에서도 "○○가 먹고 싶다" , 혹은 뭔가를 하는데 그것이 먹고 싶어졌다는 식의 식욕과 관련된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빨간 사과가 좋아 컴퓨터도 사과 그림을 로고로 쓰는 매킨토시를 사용한다는 이야기에선 취향, 그 자체가 삶의 근본 전제가 된 인간형을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좋고싫음을 떠나, 영상.소비 세대의 내면 풍경을 앞서 그려낸 무라카미의 통찰력과 재능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밖에도 이 책은 골프에 대한 반대와 달리기에 대한 찬양, 비행기의 소란스러움에 대한 불만, 여행지에 대한 단상 등으로 이뤄져 있다.

또 여권 운동의 상징적 차원에서 한때 브래지어를 불에 태우던 사례를 떠올리며 그 브래지어가 새 것인지, 입던 것인지 궁금해하다가 새 것이라면 너무 아까웠을 것이라는 엉뚱한 상상을 하고, 자신은 절대로 무언가의 '상징' 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소설이건 에세이건, 관례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는 일견 황당하기조차 하다.

하지만 무라카미는 이렇게 말한다. "젊은 독자를 대상으로 쓰는 만큼, 이런 것은 모두 알고 있을테니까 일일이 설명할 필요는 없다는 식의 단정적 주장과 무엇이 올고 그른가 강요하는 듯한 글쓰기는 하지 않았다. "

우상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