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역(逆)정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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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가 세상만사 잊고 성지순례 하듯 고향을 다녀온 사이에도 나라 밖은 바쁘게 돌아갔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낸 가운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2일 집단안보권 발동을 결정, 점점 전운이 짙어가고 있다. 같은 날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도 "오사마 빈 라덴이나 탈레반 정권과 외교는 없다" 며 전쟁불사를 선언했다.

그러나 정작 미국의 공격목표인 빈 라덴의 소재는 여전히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2일 파키스탄의 한 신문이 '빈 라덴이 파미르 고산지대로 은신한 것 같다' 고 보도하자 영국의 가디언지는 '빈 라덴이 카불에서 목격됐다' 고 맞받아 쳤다.

얼마 전엔 그가 이미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외국에 도피 중이란 보도도 있었다. 어느 게 사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언론의 추측 보도는 계속된다. 연일 '손님 끄는' 뉴스가 쏟아진다. 여기엔 타블로이드지와 권위지의 차이도 별반 없다.

'전쟁의 첫번째 희생자는 진실' 이란 말이 있다. 전쟁이 터지면 온갖 추측과 소문이 난무해 실체적 진실은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는 얘기다.

특히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조작된 정보가 판을 친다. 언론정보학에서 말하는 진실한 정보의 주위엔 늘 '사이비 정보 삼총사' 가 따라 다닌다. 오보(Misinformation)와 역정보(Disinfomation), 그리고 선전(Propaganda)이 그들이다.

오보란 말 그대로 잘못된 정보, 혹은 이를 보도하는 행위다. 역정보는 어떤 목적을 위해 교묘하게 조작한 정보를 말한다. 그게 그거 같지만 오보가 단순히 실수나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정보로 가치중립적이라면, 역정보는 애초부터 의도가 분명하다.

선전은 원래 사실에 근거한 정보나 이념을 체계적으로 알리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었으나 나치의 '선전' 상 괴벨스 덕분에 요즘은 보통 선동과 같은 부정적 의미로 쓰인다.

어쨌든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 중인 지금 전세계 시민은 이 사이비 정보 삼총사를 만끽(?)하고 있다. 그럴수록 점점 더 헷갈릴 뿐이다.

여기에다 우리나라 국민은 '이용호 게이트' 를 둘러싼 여러 가지 소문과 역정보에 곱으로 정신이 사납다. 추석 연휴가 끝나기 무섭게 새로운 혐의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빈 라덴을 둘러싼 소문이 대부분 오보나 역정보로 밝혀지고 있지만, 우리는 항간의 소문이 이내 사실로 확인된다는 점이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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