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다운 투 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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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러시아워2' 에서 청룽(成龍)과 손발을 맞춘 크리스 터커의 특기는 쉴 새 없는 입놀림이다.

따발총처럼 말을 쏘아댄다. '다운 투 어스' (Down to Earth)의 크리스 록도 입심만큼은 터커에게 뒤지지 않는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속사포를 날려댄다.

'다운…' 은 워런 비티가 연출.각본.주연을 도맡은 1978년작 '천국은 기다릴 수 있어' 를 모태로 했다. '지상으로 내려오다' 는 뜻의 제목처럼 교통사고로 사망했던 2류 코미디언 랜스(크리스 록)가 천국에서 속세로 다시 내려와 벌이는 에피소드를 장난스럽게 그리고 있다.

일단 아이디어는 신선한 편이다. 천사의 실수로 예정보다 훨씬 일찍, 그래서 억울하게 천국에 들어간 흑인이 우여곡절 끝에 백인의 몸을 빌려 지상에 내려와 선행을 베푼다는 내용이다. 미국 사회의 고질병인 흑백문제에 대한 은유일 수 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백인 기업가의 몸을 빌려 다시 태어난 랜스가 집안 일꾼들의 월급을 올려주고, 곧 문을 닫아야 할 운명이던 지역 병원을 살려내고 등등.

그러나 '다운…' 은 여기에서 한걸음도 발전하지 못한다. 백인의 뚱뚱한 몸과 흑인의 선량한 영혼을 결합한다는 발상은 새롭지만 그것은 단지 웃음을 끌어내는 장치에 불과하다. 미국의 사회적 질환에 대한 깊이 있는 발언이 전혀 없는 것.

그저 변죽만 울리는 모양새다. 엉뚱한 상황을 연속해 보여주며 헛헛한 웃음만을 유발한다. '아메리칸 파이' '너티 프로페서' '개미' 의 폴 와이츠.크리스 와이츠 형제 감독이 연출했다. 15세 관람가. 6일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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