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제사제도를 바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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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 사회 풍습의 하나인 제사제도에 대한 여성계의 불평은 많이 들어 알고는 있었으나 박미라씨가 기고한 '며느리를 위한 詩를 읽으며'를 읽고 충격을 받은 남성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박씨는 "명절은 부계(父系)혈통 중심의 결혼문화가 안고 있는 모든 부조리를 응축시켜 놓은 날이다" 라고 하면서 근본문제는 남성중심의 가족문화와 혈통권위주의가 낳은 산물이라고 통박하고 있다.

*** 여성에 부담주는 제삿날

토장(土葬)문화와 더불어 제사문화도 현대사회에서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명절 제사는 농경시대의 산물이다. 가을 추수를 마치고 하루를 명절로 보낸다. 농사가 잘 된 것도 조상 덕으로 돌려 조상에게 절을 하고 일가친척이 모여 마음 편하게 쉬는 것이 추석의 유래라고 알고 있다.

조상을 모시는 일이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농경시대 문화를 그대로 이어가야 할 것인가는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명절뿐 아니라 1년에 몇 번씩 돌아오는 제삿날이 박씨가 말한 것같이 여성의 육체적.정신적 부담은 말할 것도 없고 마치 남성의 날인 양 착각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조상 섬기기 문화도 달라져야 하고 달라지게 할 책임은 남성의 몫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박씨의 글에 화답이 될는지 모르겠으나, 묘지문제와 제사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을 우리 가족에게 유언으로 남기고 몸에 지니고 다니는 유서를 그대로 전재하기로 한다.

*** 변화시킬 책임은 남성의 몫

"사랑하는 처와 자식들에게

나는 내 평생을 행복하게 살았다고 생각한다. (중략)죽어서 내 몸으로 불행한 사람과 앞으로 살아야 할 젊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면 죽은 몸 하나 바치는 것은 아깝지 않다. 우리나라는 시신을 병원에 기부하는 사람이 적어 젊은 의학도들이 해부학 공부에 큰 지장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이 장기화하면 의사의 실력이 저하돼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기왕에 내 장기를 기증하는 마당에 내 시신도 의학도들의 실험공부를 위해 대학병원에 기증하기 바란다.

나중에 화장(火葬)을 하고 유골은 내가 좋아하는 동해 바다에 뿌려주기 바란다. 평생을 바다와 함께한 나로서는 바다로 돌아가는 것이 나의 큰 기쁨이다. 우리나라는 토장풍습 때문에 선원이 바다에서 사고로 사망하면, 유족은 시신을 고국에 가지고 오도록 요구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으로는 우리나라 해운.수산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해운의 기업가가 모범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 나머지 결단을 한 것이니 지켜주기 바란다.

*** 누군가는 먼저 시작해야

또한 일반적인 제사는 지내지 마라. 어느 집이나 맏며느리 되는 사람의 노고가 너무나 크다. 기일 아침에 각자의 집에서 나의 사진과 빨간 꽃 한 송이 꽂아놓고 묵념추도로 대신하기 바란다. 그리고 저녁에 음식점에 모여 형제간의 우의를 다지는 기회로 삼아라. 식비는 돌아가면서 내도록 하여라. 그리고 이러한 추도도 너희들 일대(一代)로 끝내기를 바란다. "

나는 '며느리를 위한 詩' 를 읽고서 몸에 지니고 다니는 유서에다 한마디 덧붙이기로 하였다.

"친척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말고 내 유언대로 하여라. "

누군가 시작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

박종규(바른경제동인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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