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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갈팡질팡 쌀정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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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확기를 눈앞에 두고 쌀수매 방침이 한달도 못돼 수정돼 당사자인 농민은 물론 지켜보는 국민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여기에 쌀문제를 여(與)건 야(野)건 당리당략의 입장에서 접근하고 있어 그냥 두면 쌀 정책이 어디로 떠내려갈지 한마디로 걱정이 한둘이 아니다.

정부와 여당은 어제 올해 쌀수매량을 당초 1천3백25만섬에서 농협이 추가로 2백만섬을 더 매입, 1천5백25만섬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 추수기와 단경기의 쌀값 계절 진폭을 유지하기 위해 쌀값이 떨어지면 수매한 쌀을 내다팔지 않겠다는 최종 방침을 확정 발표했다. 올해 생산량이 당초보다 웃돌 예상에다 농민들이 쌀값 하락에 불안해하는 점을 감안, 정부가 추가 부담을 지면서 특단의 추가 대책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쌀 산업 중장기대책을 내놓은 뒤 산지에선 정부가 쌀 정책을 포기했다는 등의 소문과 함께 양곡수집상들이 뒷짐을 지면서 쌀값이 떨어져 왔다.

그러나 이는 과잉재고를 안고 있는 현실에선 당연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올 수매방안을 처음 내놓은 게 바로 8월 말이었는데 그때 몰랐다면 단견도 이런 단견이 있을 수 있겠는가.

농촌에선 쌀값 하락과 더불어 정부의 향후 쌀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농심이 흉흉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부에선 추수해야 할 논을 갈아엎고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단체들의 시위도 확산하고 있다.

물론 여기엔 이해집단으로서의 농민들의 일방적 주장이 없는 게 아니다. 그러나 사태가 이렇게까지 발전한 데에는 농정(農政)의 책임이 더 크다. 문제가 된 쌀 과잉을 덮어둔 채 정부는 지난 여름까지도 다수확정책만을 고집했다. 그런데 추수기를 코앞에 두고서 정책을 선회하니 믿을 농민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농림부는 쌀 중장기대책이 농촌에서 큰 논란이 되자 이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혀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들고 있다. 한두 달 안에 만든 중장기대책도 아닐진대 장관이 바뀌었다고 정책을 뒤바꾼다면 결코 제대로 된 농정이라 할 수 없다.

야당의 대북 쌀지원 제안도 문제는 마찬가지여서 잉여미의 대북지원은 분명 바람직한 선택이나 제공할 물량이나 재고미를 줄지, 수입쌀을 줄지 등 세밀한 검토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야당측은 농촌의 정서가 심상치 않다며 불쑥 숫자까지 2백만섬을 들먹여 그렇지 않아도 달아오른 농심에 불만 질러놓고 말았다.

쌀 산업은 근본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양보다 질 위주의 적정생산으로 가고 농가에도 생산보장보다는 소득보장을 해주는 정책으로 전환돼야 한다. 되풀이되는 풍.흉년이나 멀리는 통일 이후까지의 고려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전환의 과정은 쌀이 지닌 정치.사회적 특수성으로 추진이 간단치 않고 정권의 차원을 뛰어넘는 정책의 일관성이 담보돼야 한다. 정부가 지금처럼 임기응변의 대응만 일삼는다면 정책의 신뢰도만 떨어지고 해결과는 거리가 멀어질 뿐이다. 여건 야건 환심을 사려다 결국 농심만 울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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