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은선·김연아 ‘월드 퀸’ 낸 한국, 양성평등은 OECD 꼴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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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과제 세미나 ‘품격 높은 선진 일류국가 진입 대토론회’가 28일 경기도 과천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열렸다. 한국교육개발원 김태완 원장이 ‘글로벌 시민교육의 방향’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총리실과 중앙일보의 후원으로 28일 경기도 과천의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제3회 국정과제 공동세미나: 품격 높은 선진 일류국가 진입을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이틀간 열리는 이번 토론회는 한국교육개발원 등 22개 국책 연구기관장이 분야별 정책 방향을 제안하고 고위 공무원과 교수, 언론인 등 전문가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자리다.

첫날 토론회에 참석한 정운찬(사진) 총리는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갖고 있는 원전 수출국,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국이자 핵안보 정상회의를 유치한 나라”라며 “그러나 질서와 문화의식, 나눔과 배려 등 사회 전반의 질적 선진화와 민주주의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때 품격 있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첫날 열린 토론회는 시민교육에서부터 양성평등, 기부문화 선진화와 재난안전관리체계 등 우리 사회의 현안을 씨줄과 날줄로 묶어 고민을 나누는 자리였다.

◆양성평등=오은선 대장은 27일 안나푸르나에 태극기를 꽂으며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을 모두 오른 세계 최초의 여성이 됐다. 피겨 여제(女帝) 김연아는 어떤 남성 못지않게 한국이란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무슨 큰 기록을 남기는 일만이 아니다. 정부에서, 기업에서, 여성의 능력이 고루 발휘되고 있다. 이용걸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여성 사무관들과 일해본 경험을 이렇게 말한다.

“노동의 성격이 곡괭이질에서 컴퓨터와 머리를 쓰는 형태로 바뀌면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능력을 발휘하고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선진국과 비교하면 아직도 멀었다. 지표로만 봐도 양성평등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최하위권이다. 지난달 OECD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정규직 근로자의 남녀 임금격차는 38%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회원국 평균치가 17.6%이니, 우리나라가 평균을 한참 끌어내린 셈이다.

이런 지표들을 반영해 OECD가 산출한 남녀평등지수는 1995년 37위를 기록한 이후 조금씩 올라 지난해엔 25위였다. 그러나 95년 90위로 시작한 여성권한 척도는 아직 60위권(2009년 61위)을 맴도는 수준이다.

이날 토론회에서 ‘글로벌 수준의 양성평등 선진화 방안’을 내놓은 김태현 여성정책연구원장은 “여성가족부를 포함해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사회통합위원회, 성평등위원회(가칭) 등이 참여하는 국가 성평등지표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곳을 통해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범정부적 성평등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양성평등 문제는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과도 연결된다. 김용하 보건사회연구원장은 ‘국민체감형 행복지표 향상 방안’을 통해 양성평등과 행복지표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그는 “여성의 고학력화와는 대조적으로 고용률은 OECD 평균(59.7%)에도 못 미치는 57.1%”라며 “출산과 보육, 자녀 교육으로 이어지는 양육과 가사 부담으로 인한 경력 단절이 일차적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해법으로 육아휴직의 실질적 정착과 사내 보육시설 확대 등을 꼽았다. 이 문제는 국민의 체감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우선순위로 삼자는 주장이다.

◆기부문화 활성화=우리 사회에서 ‘기부문화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위에 가깝다. 10년간 최빈국 국민을 위한 백신 개발에 100억 달러(11조원)를 지원하겠다는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같은 인물은 언제나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 갈 길이 먼 것이 현실이다. 원윤희 조세연구원장은 기부문화의 선진화를 위해 ▶기부금 제도를 단순화하고 ▶전문 모금기관을 키우고 ▶기부와 관련한 세제 지원을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원 원장은 “기부에 대한 조세지원 수준이 미흡하다”며 “소득공제 한도 확대에 따른 기부금 추이를 검토한 후 추가적인 한도 확대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세제 지원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이용걸 기획재정부 제2차관은 “세액공제는 ‘국가가 기부를 대신하라’는 얘기나 같다”며 “소득공제가 15% 수준이면 전체 기부자의 90%가 공제 혜택을 다 볼 수 있다”며 “세제 혜택을 대폭 확대하면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원 원장은 “조세연구원장으로서 조세 지원을 확대하자고 말하긴 참 어렵지만 중산층에까지 기부문화가 확대되려면 소득공제가 아닌 세액공제 방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부 내 소통=정부 부처 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효과적인 의사 전달 체계가 필요하다는 주문은 각종 토론회의 단골 메뉴다. 이날 토론회에서도 김기표 한국법제연구원장은 ‘효율적 정부’라는 시스템을 제안했다. 정책 수립 단계부터 정책의 근간인 법률에 대한 정보를 나눠 효율성을 더하자는 취지다. 그는 “부처 간 정책 조율이 이뤄지지 않아 법제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컨대 자유무역협정(FTA)처럼 경제·사회적으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정책을 추진할 경우 부처 간에 정보 공유 시스템을 갖춰야 비효율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재난관리체계에서도 소통은 강조됐다. 박응격 한국행정연구원장은 “우리나라 재난관리는 관료제에 따른 명령과 통제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그 대안은 ‘범부처 재난안전관리 체계 구축’이다. 박 원장은 “비상시엔 갑자기 관련 공무원이 만나 신속하게 대응하기 힘들다”며 “정부와 지방정부 사이를 오가며 평소에 의견을 전달하는 상설 협력위원회를 신설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상향식 토론 문화가 약한 것도 정부 내 소통의 장애 요소로 꼽혔다. 윤장근 법제처 차장은 “권위에 의존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권호·김경진 기자
사진=조용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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