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이철호의 시시각각

북한은 짐바브웨에서 배워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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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연일 ‘자살골’을 차대는 북한이 안쓰럽다. 부동산 몰수로 현대를 압박하려고 했다면 계산 착오다. 중국 변수를 간과했다. 요즘 중국은 전쟁 중이다. 남부지역의 심각한 가뭄으로 수력발전을 못 할 정도다. 남부지역은 수출 근거지다. 중국 정부는 화력발전을 집중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선박 총동원령을 내렸다. 북부지역의 석탄 등을 남쪽으로 엄청나게 실어 나르고 있다. 그 덕분에 해운산업의 지표인 발틱운임지수(BDI)가 두 배나 뛰었다. 현대상선의 경영 호전과 함께 현대는 최악의 국면을 벗어나고 있다. 현대그룹의 전체 매출에서도 대북사업 비중은 1%에 지나지 않는다.

천안함 사태가 북한의 도발이라면, 이 역시 잘못된 선택이다. 전통적으로 4월은 남북 협상의 계절이다. 지금쯤 비료 지원에 합의해야 모내기가 끝나는 6월 중순에 비료가 뿌려진다. 해마다 남측이 지원한 30만t의 비료는 북한 전체 비료의 60%를 차지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영농철에 비료가 부족하면 연말 북한의 쌀 생산량은 50만t 정도 줄어든다. 그런데 천안함 사태가 터졌다. 올해 비료 지원은 물 건너가 버렸다. 해마다 110만t의 쌀이 부족한 북한으로선 ‘고난의 행군’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우리 인민이 강냉이밥 먹는 게 제일 가슴 아프다”던 김 위원장의 가슴은 더 아플 수밖에 없게 됐다.

얼마 전 필자는 북한의 아시아판(版) 짐바브웨 현상을 경고했다. 지금 북한은 아예 닮은꼴이 되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28년간 짐바브웨를 지배한 로버트 무가베(84) 대통령은 외국 자본을 쫓아내고 농장을 몰수했다. 두 차례 화폐개혁이 실패하면서 돈만 줄곧 찍어댔다. 인플레가 2억%를 넘었다. 무가베는 절반 값에 물건을 내놓으라고 총칼을 휘둘렀지만 공장의 줄도산으로 물자 부족은 더 심해졌다. 1300만 명 인구의 90%가 실업자다. 이 나라 재무장관은 한 달 만에 인플레가 300%를 넘자 이렇게 말했다. “물가상승률이 점점 감소하는 게 다행이다.”

국제 기준을 무시한 부동산 몰수 조치로 북한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누가 북한에 투자하겠는가. 북한은 짐바브웨를 재발견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부터 무가베가 180도 노선을 바꿨기 때문이다. 짐바브웨는 소용없는 물가통계부터 없앴다. 이와 함께 자국 화폐(짐바브웨 달러)를 금지시키고 달러·유로화 등 외국 화폐를 통용시키고 있다. 올해 초에는 세계를 향해 “더 이상 피 묻은 다이아몬드는 팔지 않겠다”며 인권개선을 다짐하기까지 했다. 싸늘했던 국제적 시선도 누그러지고 있다. 이후 짐바브웨는 조금씩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요즘에는 바로 옆 남아공의 월드컵 특수를 기대하며 잔뜩 들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인도의 아마르티아 센은 “이 지구상에서 정치와 관계없는 식량 문제는 없다”고 했다. 잘못된 정치가 식량난을 낳고, 식량난이 또 다른 정치적 위기를 몰고 온다는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잇따른 자충수로 코너에 몰렸다. 천안함 사태로 남측은 국제공조를 통한 압박에 나설 수밖에 없다. 세계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도 대놓고 북한 편을 들기는 어렵다. 금강산 부동산 몰수는 북한이 자초한 악재(惡材)다. 북한은 머쓱하더라도 하루빨리 다시 다리를 건너오는 게 상책이다. 중국은 북한이 따라 하기엔 너무 앞서 있다. 오히려 짐바브웨에서 배울 게 적지 않을 것 같다. 짐바브웨는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단골 방문국이고, 북한 축구 대표팀이 2주간 전지훈련을 하는 곳이다.

이철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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