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동양문화와 교감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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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9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8강전
[제7보 (103~112)]
黑. 최철한 9단 白.구리 7단

서양 바둑 팬들은 지적 수준이 높고 그래서 꽤 따지는 편이다. 그들은 아마도 지금 상황을 이해하기 무척 힘들 텐데 예상 문답은 이렇다.

-왜 이런 험악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나. 수를 읽고 하는 싸움인가.

"기세가 정면 충돌한 탓이다. 수 읽기가 기본이지만 수를 다 읽을 수는 없다. 육감과 통찰력.용기로 싸움을 시작하고 변화에 따라 수를 읽는다. 안개 속 싸움인 셈이다."

-바둑은 합리적인 게임이다. 그런데 세계 최고 수준의 고수들이 왜 이런 도박을 감행하나.

"바둑은 합리적이지만 승부는 합리적이지 않다. 고수들끼리 마주치면 여기서는 싸워야한다거나 여기서는 한치도 물러서면 안 된다는 느낌, 즉 승부의 감(感)에 더욱 민감해지게 된다."

이런 대화가 오간다고 해도 그들의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원리와 법도가 뚜렷한 바둑에서 기세나 감은 무엇이고 더더구나 용기는 또 뭐란 말인가.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하고 자위한다. "바둑 속엔 동양 특유의 문화가 녹아 있고 우리는 바둑을 통해 그것과 교감하는 중이다."

먼지 자욱한 판 위에서 백의 구리 7단이 108의 묘수로 타개의 돌파구를 열었다. 109로 A의 축을 막자 110.112로 한 점을 잡아 꽉 막혀 있던 중앙의 활로를 여는 데 성공한 것이다.

후지쓰배 우승자 박영훈 9단은 105가 실수였다고 말했다. 105는 '참고도'흑1로 두어야 했으며, 그때는 10까지 귀가 사는 대신 중앙을 잡게 된다. 이건 흑 우세. 그러나 실전은 백 우세. 최철한이 '참고도'의 코스를 보고도 따르지 않은 것은 바둑의 또 다른 영역인'계산'의 문제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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