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화살’ 맞은 오자와 정치생명 벼랑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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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일본 정계의 최고 실력자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사진) 민주당 간사장이 불법 정치자금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재수사를 받게 됐다.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검찰심사회가 검찰 판단에 문제가 있다며 수사를 처음부터 다시 하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법 정의 실현 강화를 위해 지난해부터 권한을 대폭 강화한 검찰심사회가 검찰의 판단을 뒤집는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시민 검찰’인 도쿄 제5검찰심사회는 27일 오자와 간사장을 기소하라고 의결했다. 검찰심사회는 올 초 도쿄지검 특수부의 오자와 간사장 불기소 처분에 대해 “그의 혐의는 ‘기소 상당’에 해당된다”고 발표했다. 앞서 도쿄지검 특수부는 정치자금 관리 단체인 ‘리쿠잔카이(陸山會)’의 토지 구입에 들어간 4억 엔(약 47억원)을 둘러싼 불법 정치자금 의혹과 관련, 오자와 간사장을 두 차례에 걸쳐 소환 조사한 뒤 지난 2월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이 재수사를 거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검찰이 오자와를 다시 불기소 처분해도 검찰심사회가 또한 번 ‘기소 상당’을 의결하면 법원이 변호사를 지정해 강제 기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보다 무서운 ‘시민 검찰’=검찰심사회는 검찰이 고발 사건을 수사했을 때 고발인들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으면 사건 심의에 착수한다. 검찰의 공정성이 의심되면 시민의 눈높이로 검찰의 처분이 타당했는지 확인하는 법적 장치다. 검찰의 기소독점주의의 폐해를 견제하는 목적도 있다.

이런 취지에서 일본은 1948년 검찰심사회법을 만들었지만 그동안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미국식 배심원 제도를 도입하면서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일반 시민들 중에서 선발된 심사원 11명이 수사 검사를 불러 기소하지 않은 이유를 묻고, 수사기록 등을 심사해 8명 이상이 찬성하면 사실상 ‘재수사’를 의결할 수 있다. 검찰심사회가 의결하면 검찰은 원칙적으로 3개월 안에 결론을 내야 한다. 참의원 선거를 80여 일 앞둔 민주당으로선 심각한 치명타를 입게 됐다.

◆위기에 빠진 ‘어둠의 쇼군’=오자와는 검찰 수사에 다시 발목이 묶이는 것은 물론이고 간사장 사퇴 압력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지난 2월 검찰은 리쿠잔카이가 오자와에게 4억 엔을 빌린 뒤 장부에 기록하지 않은 사실을 밝혀냈지만 오자와에게는 면죄부를 줬다. 한동안 몸을 낮추고 있던 오자와는 이때부터 다시 ‘어둠의 쇼군(將軍·실력자)’으로 나섰다. 정부 업무는 물론 당 업무를 모두 장악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의 입장에선 오자와 간사장의 정치력 손상은 ‘순망치한’이랄 수 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의 축소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토야마 총리 혼자의 힘으로는 5월 말로 시한이 임박한 후텐마(普天間)비행장 이전 문제 해결과 7월 참의원 선거라는 장애물을 넘기가 벅차다. 정권이 출범 1년도 안 된 시점에서 정권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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