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일요일 밤, 서울광장에서의 97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사랑하는 아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균석이를 엄마·아빠 희망으로 주셨을 때 너무나 감사하고 기뻐했었다.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을 때 엄마·아빠는 (널) 볼 수조차 없었다. 균석아, 너 있는 그곳은 슬픔도 걱정도 없는 영원한 하늘나라이기에 네가 좋아하는 것은 다 이루고 편히 쉬어라.” 차균석 중사 어머니는 ‘절제’와 ‘기원’으로 단장의 슬픔을 이겨내고 있었다. 저절로 눈물이 흘렀다.

#오후 9시5분. 분향소 설치 첫날 달려온 추모객들의 생각이 듣고 싶었다. 30대 아주머니가 눈물을 훔치며 조문을 하고 나왔다. 그는 “사촌동생이 진해에서 해군으로 있어서…” 하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마침 그의 남편 권진욱(은행원)씨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지방선거, 월드컵이 다가옵니다. 냄비 기질이 있는 한국이 그들을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까요.” 그는 “천안함 추모일을 지정해 휴일로 하면 어떨까요”라고 했다. 국민이 매년 하루만은 안보 의식을 다지자는 거다.

“성금은 어떻게 써야 할까요.” “유가족들에게 일괄 배분하면 논란이 일 수 있어요.” “좋은 방법이 있나요.” “재단을 만들어 성금을 운용해 유가족들이 장기적으로 혜택을 받도록 해야지요.” “성금으로 추모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건 국가가 해야지요. 성금으로 추모관 만들면 공사 맡은 건설사만 좋은 일 아닌가요.”

희생 장병들의 영결식 이후 당장 닥칠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그리고 냉정하게 풀어나가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 9시24분. 외국인 한 명이 경건하게 조문을 마치고 나왔다. 미국정부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아시아 연구센터 브루스 클링어 선임연구원이었다. 미 CIA에서 근무한 한국통으로 국내 외교가나 정계에선 지인이 많은 인물이다. 우선 천안함 침몰 원인을 물었다.

“내가 아는 한 어뢰인 것 같다.” “근거는.” “호주에서 어뢰 폭발 실험을 하고 난 후 그 자료를 본 적이 있다.” “북한 소행이라면 한국정부가 군사적 보복을 해야 하나.” “글쎄….” 그는 되물었다. “기자의 생각은 어떤가.” “우리 정부 군사적 보복 못할 거다. 고려해야 할 일이 너무 많지 않은가.” “….”

그의 사태 인식은 상황을 악화시키고 싶지 않은 미국의 마음, 그대로였다. 하나 더, 그가 한국에 온 이유를 물었다.

“이번 사건은 국제정치학적으로 미국의 동북아 전략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하다.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질 거다.”

천안함의 비극과 슬픔은 그들에게 ‘참 좋은 한반도 정세 연구 소재’라는 말로 들렸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9시56분. 검은 군복을 입은 남성이 조문을 마치고 조의록(弔意錄)에 글을 남기고 있었다. 당당한 체구였다.

가슴엔 ‘우병영’이란 이름이 선명했다.

“군에 계시는지….” “15년 전에 공수특전단 상사로 제대했수다.” “북한한테 한방 먹은 건가요.” “물론, 보복 공격 안 하면 더 큰일 나는데.” “왜요?” “갸(북한)들은 우리가 세게 안 나가면 6~12개월 안에 꼭 한 번 더 공격을 해. 내 경험상 그래.” “정부가 알아서 대처 하겠죠.” “모르는 말씀….” 기자가 말머리를 돌렸다. “우리 군의 군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하던데.”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오냐 오냐’ 교육하니 그런 거지.” “북한군과 비교하면 어떤가요.” “저놈들 생각보다 강해. 특히 군기는 대적하기 어려워.” 며칠 전 기자는 출근길 서울역에서 제대를 앞둔 병장 10여 명과 같은 방향으로 걷다 우연히 말을 걸었다.

“요즘 장병들은 여름철에 집에 연락해 선크림 보내달라고 한다는데 사실인가요.”

병장 한 명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렇긴 한데…돈이면 더 좋지요.”

우 예비역 상사가 군기를 걱정할 만했다. 우리 군에 정작 시급한 것은 ‘화력 보강’이 아니라 ‘군기 보강’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10시20분. 귀가하는 길에 추모 게시판을 둘러봤다. 1000여 개 추모 글이 붙어 있었다. 그중 유난히 눈길을 끄는 글 하나. ‘천안함의 처참한 모습을 그대로 전시해야 한다. 다시는 이런 치욕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모두가 봐야 한다. 우리가 46명의 영웅들을 영원히 기억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최형규 내셔널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