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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평] 李會昌 대 反이회창 구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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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임동원(林東源)통일부 장관의 해임안 가결로 형성된 새로운 여소야대 아래서 올해 하반기 우리 정치의 화두는 '정치역학 구도의 큰 변화' 일 것이다.

1998년부터 지금까지는 'DJ대 반DJ' 구도 아래서 주요 정치 및 정책의 쟁점이 일어났고 해결됐다. 이 구도 아래서 최대의 정치적 수혜자는 아마도 야당인 한나라당의 이회창 총재일 것이다.

***정치역학 구도 변화 가속

그가 지난 대선에서 아깝게 패배한 후 정치적 은퇴가 아닌 정치적 재기에 성공할 수 있었고, 그후 '총풍' 및 '세풍' 사건 등을 극복하고 지난 총선에서 원내 제1당의 총재로 등극한 것도, 아울러 이념과 성향이 다른 소속의원들을 잘 단속하면서 내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장 확고한 기반을 갖추게 된 것도 이 구도 때문이다.

현재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조기 레임덕 현상과 여권에 뚜렷한 대선 후보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 정치역학의 구도가 'DJ 대 반DJ' 에서 '이회창 대 반이회창' 으로 옮겨가고 있다.

金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돼 가고 있는 이러한 변화가 약간 서운하고 실망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金대통령은 남북관계, 특히 '김정일 답방' 에 자신의 정치적 성패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 금융.기업.공공.노사부문의 개혁을 마무리하고 침체된 경제상황을 호전시켜 한국 최초로 '실패하지 않은 대통령' 이 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맞게 된 것이다.

李총재로선 지금까지 金대통령의 실정에 기인한 반사적 이익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구축해 왔지만 이것이 사라지게 돼 다소 실망스럽고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李총재는 처음으로 명실공히 원내 제1당의 대표로서 국민에게 '반DJ' 의 상징적 존재가 아닌 자신의 국정철학과 비전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맞이한 것이다.

이제 이러한 '이회창 대 반이회창' 구도의 관점에서 현재 李총재와 한나라당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점을 살펴보자. 우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金대통령과 여당의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李총재와 야당의 인기는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李총재와 야당의 인기는 큰 변화 없이 답보상태에 있다. 이것이 李총재와 야당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인데 여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수권능력의 부족이다. 수권능력이란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의 문제점을 파악한 후 건설적인 대안을 개발 제시하고 이를 집행 및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李총재와 야당은 지금까지 이러한 수권능력을 배양하는 대신 모든 것을 'DJ 대 반DJ' 구도아래 협조보다는 대결정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李총재는 이러한 대결정국 구도를 내년 대선 때까지만 끌고 간다면 차기 집권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李총재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럴 경우 우리는 수권능력이 부족한 또 한 명의 '실패한 대통령' 을 갖게 되는 불행을 겪을 수밖에 없다.

둘째, 수권능력의 부족은 야당 내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李총재와 야당은 '강한 야당' 을 주창하고 있는데 이는 당내 단속용에 불과하다. 당내인사가 조금이라도 여당의 입장에 동조하거나 李총재를 비판하는 발언을 하면 그것은 건설적인 비판이 아닌 '배신' 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당내 민주화 강화 노력을

셋째, 이러한 당내 민주화의 부재는 정치적 경험이 부족해 단기적이고 불확실하게 임할 수밖에 없는 李총재 중심의 '신가신 그룹' 때문이다.

특히 특정학교 출신 인사들이 많이 포진돼 형성된 신가신 그룹이 실제로 당 운영을 일시적으로 독점함으로써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운영이 되지 못하고 총재 일인 중심의 권위주의적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3金과의 차별성을 표방하고 있는 李총재의 한나라당에서 권위주의적 경향이 높아지고 당내 민주화가 약화돼 문제분석 및 정책개발 능력의 배양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할 때 李총재는 '준비된 후보' 로서 새로운 정국을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주도할 수 있고 나아가 '준비된 대통령' 이 될 수 있다.

咸成得(고려대 교수 ·대통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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