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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혁 칼럼] 보고 배울 일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9.11테러 대참사를 겪은 미국은 거대한 국민적 분노를 하나로 모아 신속한 보복공격에 나서는 한편으로 이런 대재앙이 왜 왔으며, 자기네의 허점.반성할 점은 무엇이고, 고치고 새로 할 일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도 활발한 논의를 하고 있다.

외신을 보면 미국의 많은 지식인.언론들이 국내안보에 허점이 많았음을 지적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오만과 독선을 반성하고 있다. 또 9.11 이후에는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더 이상 기존 안보개념과 방어태세로는 안되며, 시민들이 어디서도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비행기.고층건물 등에 대한 의식도 달라졌다고 분석한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 일을 성과없는 보복공격이나 공항경비의 한두달 강화로 끝내서는 안된다면서 더 큰 테러의 가능성에 대비하는 '국가방위의 재건' 을 촉구했다.

이런 논의들로 보아 앞으로 미국은 안보.외교.사회질서 등 여러 면에서 9.11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 국민 단합과 초당적 대응

우리로서는 테러에 대응하고 극복해 나가는 이런 미국의 노력에서 여러가지를 배울 필요가 있다. 가령 사태 직후 미국이 보인 신속한 국민단합과 초당적(超黨的) 대응이 우리에게도 가능할 것인가.

뉴욕 소방관들이 무너져 내리는 빌딩 속에서 한사람이라도 더 대피시키기 위해 끝까지 분투하다 스스로는 장렬히 순직한 그 투철한 프로의식.사명감을 우리도 갖고 있는가.

무너진 세계무역센터에서 그나마 인명피해를 줄인 것은 재난에 대비한 평소의 훈련 때문이었다고 한다. 좁은 비상계단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질서있게 대피할 수 있었던 것은 평소의 훈련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평소 그런 훈련이 있으며, 우리의 고층빌딩에서 그런 훈련의 시늉이라도 있는가.

자원봉사자와 군입대지원자가 줄을 잇고, 헌혈은 하루 만에 필요량을 넘어서는 그런 성숙한 시민의식을 우리도 기대할 수 있을까.

최근 우리나라 상황과 견주어 또 한가지 눈여겨 볼 일은 그런 대참사를 겪고 국민적 분노가 폭발한 가운데서도 보복 신중론.미국 반성론 같은 논의가 활발히 제기되는 그 공론의 장(場)이다.

90%가 무력보복을 외치는 분위기에서 보복의 악순환을 걱정하고 반미세력과 화해하라는 주장들이 사태 직후부터 나온다. 걸핏하면 반통일.반개혁으로 매도하는 우리나라 같으면 대번에 반국가.비애국이라는 무더기 욕설이 쏟아지지 않았을까.

테러 또는 재난에 대한 대응능력은 우리가 미국에 비해 훨씬 뒤떨어진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겐 국가위기가 와도 미국처럼 신속한 국민단합이 이룩될지도 의문이고, 위기에 대비한 훈련도 준비도 미흡한 상태다.

초당적 대응을 가능하게 하자면 최소한 국가권력이 정략적으로 행사되지 않는다는 국민적 믿음과 여야간의 상호 존중 및 신뢰기반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겐 그런 것이 부족하다. 중요한 국가정보는 집권측이 독점하고 있고, 계좌 추적과 도청.감청이 성행하는 불신 상황에서는 위기가 와도 초당적 대응.국민단합이 쉽게 될 리가 없다.

*** 재난 대비태세 점검 기회

우리는 테러에 관해서라면 매우 능숙하고 풍부한 경험과 노하우를 가진 이웃을 두고 있다. 지금은 대화를 하는 사이지만 그들의 잠재적인 테러능력에 대비하는 노력과 태세는 대화와는 별개로 여전히 필요하다.

우리는 과연 잘 대비하고 있는가. 미국에선 테러에 대비할 '9.11 이후의 안보' 논의가 활발한 데 우리는 그런 논의를 할 필요도 없이 모든 것이 다 잘 돼 있고 안전한가.

9.11 테러는 미국을 때린 것이지만 이처럼 우리에게도 여러모로 따져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미국의 대응을 보고 대통령은 대통령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관리와 시민은 또 그들대로 위기 때의 자기역할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 그런 각자가 얻은 교훈과 발견이 우리의 국가위기관리 능력을 강화하는 안보정책과 태세의 재점검.재정비, 테러와 재난 대응태세 확립 등 일련의 정책과 입법 및 조치로 나타나야 할 것이고, 시민의식도 한단계 더 성숙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어떻게 해야 위기 때 정부를 중심으로 국민단합이 이뤄지며 초당적 대응이 가능한지 우리 정부와 정치인들이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송진혁 <논설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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