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7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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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78. 정진, 오직 정진

수도승들은 한 곳에 머물지 않고 늘 전국의 선방(禪房)을 떠돌며 생활한다. 주로 겨울과 여름철 안거(安居)를 끝낼 때마다 옮겨다닌다. 1938년 성철스님도 경남 양산 통도사 백련암에서 동안거(冬安居)를 끝내자마자 부산 범어사 내원암으로 옮겨 여름을 지내게 됐다. 성철 스님의 스승 동산 스님이 암자를 책임지고 있었다.

성철 스님이 지닌 유일한 욕심이라면 강한 수행에의 욕심일 것이다. 성철 스님이 강하게 '용맹정진' 을 주장했다. 잠을 자지 않고 24시간 정진하는 수행인데, 성철 스님이 워낙 강하게 주장해 스님들이 모두 함께 용맹정진에 들어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방 스님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갔다. 불평도 늘어갔지만 성철 스님은 "생사해탈을 기약하는 선방 스님들이 요만한 것도 참지 못하는가" 라며 윽박지르다시피 정진을 선도해 갔다.

그러다 탈이 나고 말았다. 스님들끼리 사소한 말다툼을 벌이다가 결국에는 육박전이 벌어지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이 소식을 들은 동산 스님이 상좌인 성철 스님을 불러 엄하게 꾸짖었다. 성철 스님이 자주 들려주던 동산 스님의 꾸중.

"공부하고 싶으면 자네나 열심히 하면 되지, 왜 공부 안하려는 사람까지 얽어매 이런 야단을 내는 것이냐. 앞으로 억지로 공부시키려 하지 말고 대강대강 해라. 이것이 더불어 사는 요령이야. "

어려운 시절 절간 살림을 책임 지는 노스님의 생각과 구도열을 앓고 있는 성철 스님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다. 성철 스님이 기억하는 또 다른 당시 일화 역시 1930년대 절집의 사정과 성철 스님의 성품간의 괴리를 말해준다.

절에 곱게 차려 입은 보살(여신도)이 찾아오면 동산 스님이 몸소 밥상을 들고 대접을 했다. 성철 스님의 눈에 거슬리지 않을 수 없다. 성철 스님이 은사를 찾아가 따졌다.

"출가승이라면 인천(人天)의 스승이라 카는데, 스님은 어째 보살한테 밥상을 들고 갖다 주십니꺼□"

"자네도 나중에 절 살림을 책임 맡아 살아 봐라. 주지는 주지로 할 일이 있는 것이라. 이 절에 머무는 스님들이 수행할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내 일이야.

그러니 이 어려운 때 쌀 몇 십 가마씩 시주하는 보살한테 밥상 좀 갖다 주었기로서니 무엇이 흠이 되느냐? 자네는 그렇게 시주받은 밥 먹고 힘 내 수행하면 되고, 나는 쌀 부지런히 모으면 되는 것 아닌가. "

성철 스님도 그런 현실에 어떻게 대꾸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성철 스님은 늘 "아무리 그래도 스님은 그라믄 안된데이" 라고 우리를 가르쳤다. 실제로 성철 스님은 그렇게 살았다. 성철 스님의 후배격인 일타 스님이 들려준 얘기.

이듬해인 1939년 여름 대구 동화사 금당선원에서 하안거를 날 무렵이다. 성철 스님이 금당에서 수행하던 중 동화사 요사채에 불이 났다. 진화에 나선 스님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혼자 정진하던 성철 스님도 화재 사실을 알게 됐다. 소동에도 움직이지 않던 성철 스님이 불길이 다 잡힌 즈음 부삽과 부집게를 들고 나타났다. 그리곤 타다 남은 숯불을 담아 가지고 가 풍로에 부어놓고 약탕을 올려놓고 약을 달였다고 한다.

이 모습을 본 다른 스님들이 "불이 났는데, 어찌 저런 무심한 짓을" 이라며 웅성거렸다. 분위기가 심상찮아지자 주지 스님이 나서 "수좌(수도승)가 앞뒤 없이 한 일" 이라며 나서 무마했다.

성철 스님도 당시를 회고할 때면 "나도 그 때 내가 와 그런 짓을 했는지 모르겠데이" 라며 웃곤 했다. 그런 무심한 행동은 당시 성철 스님이 깨달음의 세계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성철 스님은 다음해인 40년 억겁의 어둠에 쌓인 동굴에 촛불을 밝히듯, 일시에 어둠을 몰아내고 무심(無心)을 증득하여 오도송(悟道頌)을 읊었다.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黃河西流崑崙頂)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도다

(日月無光大地沈)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遽然一笑回首立)

청산은 예대로 흰구름 속에 있네

(靑山依舊白雲中)'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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