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딸 낳은 지 보름 … 남편이름 감춰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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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 청소년 성매매 사실이 밝혀져 구속됐지만, 제발 남편 이름만은 공개하지 말아 주세요."

16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5층 청소년성보호정책과. 30대 초반의 A씨는 지난해 중매로 만난 남편의 이름과 직장이 공개돼선 안 된다며 울먹였다. "이름 등이 공개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해 이혼할 수밖에 없다"며 '가정'을 생각해 선처해 달라고 애걸했다. 첫딸을 낳은 지 보름 만에 남편이 청소년 성매매로 구속됐다는 B씨도 "딸 아이를 봐서라도 제발 신상공개를 막아달라"며 애원했다.

청보위는 청소년 성매매 등을 막기 위해 매년 두 차례 청소년 성범죄자의 이름.생년월일.주소 등을 공개하고 있다. 이달 말에는 청소년 성범죄자 500여명에 대한 제7차 신상공개를 한다.

1000여명의 대상자에게 '신상공개 예정 사실 통지'를 마친 청보위 사무실에는 "공개대상에서 빼달라"는 민원과 문의전화가 폭주하고 있다. 민원 형태도 한 번만 봐달라는 애걸형, 가정이 파탄 난다는 협박형, 무작정 명단에서 제외하라는 막무가내형 등 다양하다.

아들이 고시 공부 중이라는 한 60대 노인은 16일 "아들의 청소년 성매매 사실이 알려지면 시험에 불이익을 받지 않겠느냐"며 자식의 장래를 생각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번 통지로 남편이 청소년을 강제 추행한 사실을 알게 됐다는 한 40대 여성은 "사춘기 아이들이 아빠가 그런 짓을 한 걸 알게 되면 어쩌느냐"며 "제발 이름만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청보위는 신상공개에 앞서 '당사자의 의견접수.재심의.행정소송'등 구제절차를 거쳐 500여명을 추려 공개대상자를 확정한다. 성매수나 강제 추행 등 비교적 죄질이 가벼운 사안은 교육을 받고 신상공개를 면해주기도 한다.

청보위 이경은 청소년성보호과장은 "신상 공개는 청소년 성범죄자들을 벌하기 위한 게 아니라 청소년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죄 없는 부인과 자녀까지 고통을 받는 만큼 가족을 위해서라도 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범죄는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수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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