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커비전] '히딩크 테스트' 언제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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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난 10일 저녁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황인형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Sea Wars' 의 시사회에 참석했다.

월드컵 직전 개봉을 목표로 마무리 단계에 있는 애니메이션은 바닷속 전쟁을 한국적인 캐릭터를 통해 표현, 2002년 한.일 월드컵에 헌정될 영화다.

정치.예술.언론 관계자 20여명이 참석한 시사회에서 진행을 맡아보던 신중식 월드컵 문화시민협의회 사무총장이 필자에게 질문했다.

"지난주 정부의 각 부처 차관들이 모여 월드컵 관련 회의를 했다. 모두 한국의 경기력에 대해 우려했다. 과연 16강 진입이 가능한가?"

필자는 대답했다. "한국 축구는 FIFA 랭킹 40위권이다. 월드컵은 세계에서 가장 축구를 잘 하는 32개 국가를 추려 대회를 치른다. 한국의 수준은 냉정히 평가하면 '세계적 수준' 은 아니다. 따라서 남은 기간 어떻게 준비하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절박한 심정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데려왔지만 과연 평소 공부하지 않던 학생을 명문대에 보낼 수 있겠는가. "

지난 13일 대전월드컵경기장 개장 기념으로 벌어진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1차전은 무승부였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 보면 대표팀의 현재 수준으로 16강이 가능할까 하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했다.

방한한 나이지리아팀을 살펴보자. 은완커 카누.익페바.올리세 바방기다 등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이 빠진 2군이었다. 이도 모자라 경기 전날까지 13명만이 입국,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나이지리아 선수도 합류했다.

경기 이틀 전 도착해 한시간 훈련한 팀과의 경기에서 한국은 전반 45분 동안 부끄러울 정도의 허술한 수비에다 김상식의 퇴장 등 후진국형 플레이를 펼쳤다. 후진국형 축구란 바로 공.수 전환이 느린 축구를 말한다.

일부에서는 '후반 10명이 싸워 두골을 넣어 비겼으니 잘 한 것 아닌가' 라고 평가하지만 이는 결과만 보는,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나이지리아는 원정팀으로서 갖는 여러가지 악조건, 즉 시차 부적응과 급격한 체력 저하 속에서 두골을 내준 것이다.

경기 후 히딩크는 "몇몇 선수를 테스트하는데 의미를 부여했다. 일부는 제 역할을 했지만 다른 선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한국은 아직 국제적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고 평가했다.

이 평가에 대단히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국제적인 수준' 이라는 표현과 거듭되는 '테스트' 라는 단어다. 아마도 한국 축구가 국제적인 수준이 됐다면 비싼 '족집게 과외선생' 히딩크를 부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히딩크의 생각과 대표팀에 쏟는 정열과 정성에 대해 한번쯤 짚고 넘어가야겠다. 학생이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분명한 것은 최선을 다해 입시(월드컵)를 준비해야 한다는 점이다. 학생의 무능만 탓한다면 아까운 시간은 모두 날려버리게 된다.

언제까지 테스트만 할 것인가. 정말 히딩크는 최선을 다하는가에 대해서도 냉정히 생각해봐야 한다.

신문선 <본지 축구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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