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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노 파업 무산, 그 다음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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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기자만큼 공무원들과 접촉이 잦은 직업도 드물다. 취재하다 보면 지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다양한 분야의 공무원들을 수시로 상대한다. 범죄 수사를 위해 밤을 새우는 경찰관, 산불과 태풍 예방에 휴일을 반납하는 중앙 공무원, 묵묵히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지방의 청백리를 수없이 만난다. 철야근무한 그들과 아침에 해장국을 함께 먹으며 삶의 애환을 들어주는 것도 기자의 몫이다.'철밥통''복지부동' 등 부정적 인식이 떠돌아도 일부 공무원에 국한되는 비아냥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그들이 파업을 외치며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무작정 비난하기에 앞서 왜 그들이 이런 극한 상황으로 내몰렸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더 이상 권력의 하수인이 되지 않기 위해''더러운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를 쓸어버리고 공무원도 이 세상을 바꾸는 주역이자 노동자임을 선포하기 위해' 사무실을 박차고 나섰다고 했다. 이 거창한 구호가 도대체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자세한 까닭을 알고 싶어 유인물을 읽어봤다.'성과상여금 폐지, 노동조건 후퇴 없는 주5일제, 하위직 계급제도 개혁, 정년 연장, 공무원 연금법 개선' 등이 담겨 있었다. 이를 위해 노동 3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금.신분.정년.승진을 보장받아야 하고, 이를 방해하는 움직임에는 파업권으로 대항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됐다. 이것이 전체 공무원의 생각일까. 친한 공무원에게 물었다. "공직사회의 부패 척결을 위해 파업권을 보장하라면 국민이 웃겠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서 여론도, 많은 공무원도 외면한 지난 15일의 파업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이는 대장정의 서막일 뿐이다. 전국공무원노조(전공노)는 1989년 5월 창립선언으로 시작해 합법화까지 10년을 끈 전교조 사태를 전술적 교본으로 삼은 듯하다. 전공노는 "2000명에 가까운 교사가 해임되고 구속됐지만 결국 모두 복직되고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받았다"며 파업 참여를 독려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수순은 대략 그려진다.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해당 장관들은 이미 사법처리를 다짐했다. 전공노 간부들도 해직 정도는 각오한 자세다.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해직 뒤에 복직은 꿈도 꾸지 말라"고 엄포를 놓았다. 당분간 파면.해직.충돌.대결 등의 살벌한 단어들이 신문지면을 장식할 것이다.

다음 단계는 전공노의 반격이다. 한겨울에 직장을 잃은 공무원들에 대한 동정 여론이 형성되면서 탄원.단식.농성 등을 통한 장외투쟁이 본격화된다. 몇 명은 투옥돼 평범한 공무원에서 투사로 변신할 것이다.

이어 팽팽한 대결구도 속에 장기전이 펼쳐진다. 수년간 이어질 수도 있다. 국민은 관객의 위치에서 배우(전공노와 정부)들의 싸움을 지겹도록 지켜봐야 한다. 그 사이에 정권의 수명은 다해가고, 장관들은 차례로 물러난다.

결말은 어떻게 날까. 사회 화합 차원에서, 혹은 정치권의 논리에 따라 해직자들은 복직되고 단체행동권까지 쟁취하는 전공노의 시나리오가 완성될지 모른다. 3년 후 대통령 선거에서, 아니면 4년 후 총선에서 도움이 필요한 후보자와 정당은 공무원들에게 아쉬운 손짓을 할 테니까. 우리 사회의 경험칙상 법과 원칙이 눈앞의 이해를 극복한 적은 없었다.

이런 걸 두고 역사의 발전을 위한 진통이라고 한다면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파업투쟁은 앞이 뻔히 보이는 지루한 소모전에 불과하다. 전공노는 일단 정부의 노조법안을 받아들이고, 단체행동권은 사회적 성숙도에 맞춰 논의하는 게 순리다. 공무원이 공복임을 자임한다면 국민의 뜻을 좇아야 한다. 국민 대다수는 전공노의 파업을 '이 나라에서 가장 안정된 직업을 가진 공무원들의 배부른 투정'으로 보고 있다.

고대훈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