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들의 생생토크③- 프랑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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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리뻬(23·Laurence Reffay)와 한정민(24)씨는 유럽의 명문학교인 파리고등상업학교(ESCP) 재학 중 카이스트 교환학생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고영선(34·KT 근무)씨는 지난해 6개월간 프랑스의 쎄란 비즈니스 스쿨로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지난 9일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서 이들을 만나 프랑스 유학에 대해 들었다.

[입시] 평준화 오해  한국의 SKY급 대학도 있다
한정민(이하 한) : 한국에서 평준화 교육 사례로 프랑스를 드는 것을 흔히 본다. 큰 착각이다. 프랑스에도 엄연히 한국의 SKY급 대학이 존재한다. 평준화는 국립대학(Universite)에만 적용되는 얘기다. 국립대학은 입학도 쉬운 편이고 등록금도 국가가 부담한다. 하지만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대학은 따로 있다. 그랑제꼴(Grandes écoles)이라 부르는 특수 학교로 내가 재학중인 곳이다. 여기에서 비즈니스와 정치, 법과 엔지니어링 등을 선택해 전공해야 좋은 회사에 취업하기 쉽고 고급 엘리트로 인정받는다. 일부 그랑제꼴은 외국인의 입학이 허락되지 않는 곳도 있다.

리뻬(이하 리) : 고교 이후의 프랑스 진학 시스템은 조금 복잡하다. 국립대학은 소르본(LaSorbonne)이나 도핀(Dauphine)을 제외하고는 최고의 진학 대상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랑제꼴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고3 학생들처럼 공부해야 한다. 대개 고교 졸업뒤 고교내에 있는 준비반(Classe prépa)에서 2년 더꽁꾸르(concours)라는 시험을 대비해 공부다. 실력이 뛰어나다면 정기 시험을 치러 바로 합격할 수도 있지만 99% 이상은 2년간 준비한다. 그랑제꼴에 입학해 2년을 다니면 학사 학위를 받게 되고, 이후 석·박사 통합과정으로공부하게 된다. 국립대학은 대개 서류심사로 입학이 결정되는 데 비해 그랑제꼴은 서류는 물론 입학심사관과의 인터뷰, 학교 성적까지 좋아야 합격할 수 있다. 경쟁도 치열하다.

고영선(이하 고) : 국립대학은 이론과 학문 위주의 교육인 반면 그랑제꼴은 고급실무 위주로 교육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와 비교하면, 그랑 제꼴에서 엔지니어 스쿨을 졸업한 것은 카이스트를 나온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된다.

[전망] 예술분야 외에 관광산업에 깊은 노하우
한 : 초등학교 때 온가족이 프랑스로 이민을왔다. 그동안 많은 한국인 유학생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대개 음악·미술계열의 예술과 사진·건축 등을 전공하더라.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전공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프랑스엔 한국 사람들이 잘 모르는 유망 전공이 많다. 문화와 관련된 전공도 심도있게 배울 수 있고, 다양성을 무기로 한 비즈니스 스쿨도 강하다.

고 : 비즈니스 스쿨은 창의력을 바탕으로 섬세하게 나눠진 전공을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지난해 교환학생 자격으로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비즈니스 스쿨에서 진행된 투어리즘(관광경영학) 수업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여행산업에 경영지식을 접목한 강의였다. 프랑스에서만 배울 수 있는 독특한 노하우가 아주 많았다. 프랑스에서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방문객을 유치하는 자국의 장점을 활용해 관광과 관련된 수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떤 분야도 투어리즘과 연계할 수 있다. 스포츠의 경우 김연아와 연관된 투어리즘을, 의료분야라면 쌍꺼풀 투어리즘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웃음). 한국에서 프랑스로 유학을 생각하는 학생이 있다면 추천하고 싶은 연구분야다.

[차이] 현장에 사용할 수 있는 실무교육 강조
리 : 프랑스 학문은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실무지식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 수업에서 이론과 실무의 비중이 6:4 정도라면 프랑스는 3:7 정도로 볼 수 있다. 이렇게 교육을 받다보면 취업을 할 때도 실속을 강조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처럼 규모가 커야 좋은 회사로 평가받는 것 같다. 프랑스는 다르다. 회사가 다루는 분야가 얼마나 국제적이고 세계적인지에 따라 좋은 회사 여부가 판단된다. 회사의 규모는 대다수의 프랑스인들에게 평가기준이 아니다. 프랑스 내에서 갖는 영향력보다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더 중요시한다. 이런 의미에서는 프랑스가 한국보다 더 세계화된 느낌이다.

고 : 현재의 산업과 결합된 생생한 학문연구가 장점이다. 3년 전이나 5년 전의 사례가 아니라 현재의 상품과 문제점을 토대로 분석하고 연구한다. 실제로 필요한 부분만 효율적으로 공부한다는 느낌도 받았다. 예를 들면 WACC(가중평균자본비용)라는 경제용어가 있는데, 이를 구하는 공식을 배우는 대신 실제 기업에서 이것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사례를 보고 공부하는 방식이다.

리 : 일에 대한 마음가짐과 학문에 대한 자세는 한국이 뛰어난 것 같다. 세계 속에서 한국인은 일을 매우 열심히 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가 교환학생 신청국을 한국으로 결정한이유도 한국의 일하는 방식과 스타일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처음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원하던 자극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첫 수업이 있던 날 밤에 난 엄청난 양의 과제와 예습·복습을 끝내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한국인 룸메이트는 나보다 무려 2시간 이상을 더 공부한 뒤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현장] 글로벌화 체감하지만 외국인 차별 존재해
한 : 차별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프랑스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던 차별을 느낄 때가 있다. 취업도 외국인으로 여권을 가지고 있다면 어렵다고 봐야 한다. 프랑스에서 호텔경영을 전공한 지인이 현지에서 취업을 하려 했는데, 비자와 거주요건 등 여러 문제에 걸려 1차 서류 전형에서 낙방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프랑스 사람들은선량하고 부당한 점을 개선하려 노력한다. 한국의 이미지도 많이 좋아졌다. 특히 지난 2006년 깐느영화제에서 ‘올드보이’가 선전하면서 프랑스 언론이나 국민들이 한국의 문화에 대해 많이 관심을 가지게 됐다.

고 : 학생비자를 한 학기 받아 프랑스를 다녀왔다. 예전에 미국비자가 존재하던 시절엔 미국비자 받기가 제일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프랑스 비자 받기도 만만치 않다. 프랑스어를 어느 정도 하지 않으면 비자를 받기 어렵다. 대학생은 학교 성적표도 제출해야 한다.

리 : 세계화가 진행된 것에 비해서는 놀랄만큼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프랑스에서 공부하기위해서는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올 것을 권한다.

[사진설명] 고영선씨와 로렌스 리뻬·한정민씨(왼쪽부터)가 프랑스의 교육시스템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지은 기자 ichthys@joongang.co.kr 사진="황정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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