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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필요한 건 東風뿐 … 아시아 경제허브로 도약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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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그린 엑스포’를 선보이기 위해 상하이 전람구역 내 엑스포축(거리 이름)에 건설한 첨단 구조물 양광곡(陽光谷). 양광곡은 태양광을 이용해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한다. [상하이 블룸버그=연합뉴스]

‘모든 게 준비됐다. 필요한 것은 동풍뿐이다(萬事具備 只欠東風).’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조조와의 결전을 준비한 뒤 ‘동풍만 불기를 기다린다’며 한 말이다. 다음 달 1일 엑스포 개막을 앞둔 상하이는 모든 준비를 끝내고 개막일만 기다리고 있다. 상하이 거리는 온통 엑스포 엠블럼으로 뒤덮였다. 승용차 안에는 엑스포 상징물인 ‘하이바오(海寶)’ 인형이 매달려 있고, 학생들 가방에도 엑스포 스티커가 붙어 있다. 새로 단장한 훙차오 공항의 활주로에는 거대한 엑스포 엠블럼을 몸통에 장식한 비행기가 뜨고 있다.

엑스포 사무국에서 만난 중국 측 관계자들은 잔뜩 흥분된 모습이었다. “이번 엑스포는 상하이가 100여 년 만에 다시 깨어났음을 전 세계에 선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상하이 역사를 떠올리면서 하는 말이다. 1900년대 초만 하더라도 상하이는 동아시아 최고의 비즈니스 도시였다. 황푸강 주변 와이탄(外灘) 서쪽 시내에서는 주식이 거래되고, 항구는 서구 각국을 오가는 무역선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곳은 ‘빼앗긴 항구’였다. 미국·프랑스·일본 등의 열강에 조차지를 내줘야 했고, 1930년대 말에는 일제에 점령당했다. 당시 와이탄 공원에는 ‘개와 중국인은 입장 금지’라는 푯말이 나붙기도 했다. 굴욕의 상징이었던 그곳에서 ‘경제올림픽’이라는 엑스포가 열리는 것이다.

엑스포는 산업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보여주는 거대한 이벤트다. 증기기관차는 1851년 런던 박람회에서, 자동차는 1885년 앤트워프 박람회에서 선보였다. 일반인이 TV를 접한 것도 1939년 뉴욕 엑스포에서였다.그렇다면 이번 상하이 엑스포에서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이런 기대감을 갖고 엑스포를 참관한다면 분명 실망할 것이다. 현대 엑스포는 단순히 기술을 전시하고, 발명품을 보여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인류 발전을 위한 방향을 제시한다. 상하이가 선택한 담론은 ‘인간과 도시의 조화’다. ‘Better City, Better life’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모든 전시관은 이 주제에 맞춰 전시물과 이벤트를 준비했다. 획기적인 발명 전시품이 아니라 첨단 기술이 어떻게 도시 속 인간의 삶을 바꾸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엑스포는 한 도시를 송두리째 바꿔 놓기도 한다. 1889년 파리 엑스포가 그랬다. 당시 엑스포가 열린 곳은 서부 군사 연병장으로 쓰였던 낙후된 지역이었다. 그러나 에펠탑이 세워지고 갖가지 볼거리를 배치해 새로운 명소로 자리 잡았다.이번 엑스포도 다르지 않다. 전시회가 열리는 5.28㎢의 부지는 상하이에서 가장 낙후된 빈촌이었다. 황푸강 옆 장난(江南)조선소를 중심으로 재래식 공장이 흩어져 있고, 주민들은 환경오염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하이에서도 가장 녹지율이 높은 청정지역으로 탈바꿈했다. 환골탈태, 상전벽해다. 파리 엑스포 전시장이 그랬듯 상하이 엑스포 부지는 또 다른 랜드마크로 부상하고 있다.

상하이의 변신도 눈부시다. 불과 1년 전 3개 노선뿐이던 지하철 노선은 13개 노선으로 늘어났다. 지저분한 ‘지방 비행장’이었던 훙차오 공항은 국내외 항공노선과 고속철도·지하철 등을 연결하는 ‘교통 허브’로 발돋움했다. 주요 거리와 아파트도 칙칙한 옷을 벗고 새색시처럼 단장했다.

중국이 이번 엑스포를 통해 노리는 또 다른 효과는 상하이를 ‘글로벌 경제도시’로 각인시키는 것이다. 런던·파리·시카고·뉴욕·오사카 등이 엑스포를 계기로 세계적인 경제도시로 성장했듯 상하이의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얘기다. 실현 가능한 청사진이다. 상하이는 예나 지금이나 물류 중심지다. 양쯔강 내륙과 태평양 각국을 연결하는 물류 허브이고, 주변에 ‘창싼자오(長三角:양쯔강 삼각주)’라고 불리는 거대 배후 산업단지가 형성돼 있다. 여기에 상하이의 금융·서비스 허브 기능이 더해지면서 지구촌에서 찾아보기 힘든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창싼자오의 이런 힘을 분출하는 곳이 바로 상하이다. 그러기에 “G2(미국·중국) 시대에 상하이는 미국 뉴욕과 견줄 세계의 양대 경제도시로 성장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번 엑스포에는 192개 국가가 참가한다. 약 500만 명의 외국인이 관람할 전망이다. 그들은 상하이에 자국의 이미지를 홍보하겠지만, 거꾸로 상하이의 이미지를 자기 나라에 퍼 나를 것이다.

상하이 엑스포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역시 작지 않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 이어 또다시 한·중 공동발전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국가관뿐만 아니라 기업관을 세웠다는 점도 높이 살 만하다. 주최 측은 이번 엑스포에 약 7000만 명이 입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동안 방문객이 가장 많았던 오사카 엑스포(70년)의 6400만 명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하루 평균 약 40만 명, 절정기에는 최고 60만 명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관람객들은 이번 엑스포를 “출국하지 않고도 세계를 두루 살필 수 있는 기회”로 본다. 뒤집어 보면 한국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줄 기회라는 뜻도 된다. 한국기업연합관 설립을 주도했던 오영호 무역협회 부회장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중국 사회에 한국 기업들이 양국의 공동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겠다”고 말했다.

상하이 엑스포의 의미는 훗날 여러 가지로 평가될 것이다.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바로 21세기 ‘차이나 파워’의 도약을 선언하는 거대한 정치·경제·문화 이벤트라는 사실이다.

상하이=한우덕 기자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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