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수회담, 청와대 "빨리"·야 "천천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가 "김대중(DJ)대통령을 만나겠다" 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여야 영수회담의 구체적인 전망이 서지 않고 있다.

당초 영수회담을 제의했던 청와대는 되도록 빨리 회담성사를 위한 사전조율에 착수해 날짜를 잡겠다는 입장이다. 회담을 통해 민생 문제 등에 대한 한나라당 李총재의 협력을 이끌어냄으로써 민심을 안정시키고, 정국 주도권도 회복하고 싶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달 하순부터 다음달 초까지 정상(頂上)외교에 나서는 金대통령의 출국 전에 회담이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 상황이 일단 마무리돼야 외교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기 때문" 이라는 게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서두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너무 성급하게 회담을 위한 회담을 하자는 식이어서는 안되고, 국민의 희망과 기대를 충족시키는 회담이 돼야 하므로 시간이 필요하다" (金杞培사무총장)는 것이다.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李총재는 각계 각층의 원로와 만나 충고와 지혜를 듣고 여론을 수렴한 뒤 실무자들의 조율을 거쳐 회담을 하겠다는 입장" 이라며 "대통령의 외국방문 일정은 알고 있지만 그 일정에 억지로 맞추긴 어렵다" 고 말했다.

더구나 李총재는 金대통령과의 회담을 하기에 앞서 김영삼(金泳三.YS)전 대통령과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를 만날 생각이다. YS.JP뿐 아니라 각계 원로들의 입을 빌려 DJ의 국정실패를 지적하겠다는 구상인 것 같다.

YS나 JP가 이같은 李총재의 주문에 순순히 응해줄지는 불투명하다.

영수회담 의제를 둘러싼 실무협상도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李총재는 영수회담에서 DJ의 민주당 총재직 사퇴, 이한동(李漢東)총리 자진사퇴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임동원(林東源)전 통일부 장관이 대통령 외교안보 특보로 기용되는 것도 강력히 반대할 것이라고 전해진다.

청와대는 실무접촉에서 李총재의 발언 수위를 최대한 낮추려고 할 것이나 李총재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작다. 청와대에서는 이와 별도로 "여소야대의 상황을 각오한 DJ가 李총재에게 많은 것을 양보할지 의문" 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상일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