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틀 바꾸는 ‘결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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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호 35면

하루 종일 많은 사람을 만나고 수행비서가 늘 그림자처럼 곁에 있을 것 같은 기업이나 조직의 최고책임자들. 그들이 ‘가장 외로운 순간’이라고 생각하는 때는 언제일까. CEO를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다 보면 “전망 좋은 집무실에 문득 혼자 있다고 느낄 때” “점심 약속이 취소된 뒤 방을 나가 보니 직원들은 벌써 나가고 없을 때”라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홀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외롭다”고 털어놓는 CEO들이 가장 많다. 결단이란 말은 결정보다는 훨씬 강도 높은 압박이 느껴진다.

회사 홍보용 이미지 광고는 A안과 B안 중 전략에 맞는 것을 ‘결정’한다고 하지만, 많은 투자가 필요한 신사업은 ‘결단’한다는 것이 더 잘 붙는 말이다. 아무리 사전 조사를 철저하게 하고 참모들의 냉철한 분석표가 첨부됐다 하더라도 최종 책임자는 예측할 수 없는 리스크를 등에 지고 혼자 결단해야 한다. 그리고 ‘빠른’이라는 보이지 않는 수식어가 결단이란 단어 앞에 납처럼 붙어 있다. 더 큰 고독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는 것이다. 세상은 그들의 무게를 덜어 줄 결단 리스크 보험이라도 만들어줘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기업의 최고책임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나의 최고책임자인 ‘나’도 인생의 고비를 넘어가면서 결단의 순간에 놓이게 된다. 50여 군데 기업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답이 없을 때 계속 더 두드려야 하는지, 눈높이를 낮춰야 하는지 냉철하게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있다. 또 이쯤에서 회사를 옮겨 경력관리를 해야 할지, 선배와 함께 창업을 해야 할지도 말이다. 그러나 살다 보면 이 정도는 인생 결단 프로그램 중 오프닝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소피의 선택’이란 오래된 영화가 있다. 유대인인 소피는 아들, 딸과 함께 포로수용소로 가는 트럭에 오르다 독일 군인의 제지를 받는다. “자식들 중 하나만 데려갈 수 있다.” 엄마 소피는 피가 마른다. 데려가지 않은 자식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살아남지 못할 게 분명하니 말이다. 결국 군인의 손에 의해 한 아이가 내려지고 소피는 차에서 멀어지는 아들을 보며 통곡한다. 결정하지 못하면 결정 당한다.

위 사례는 극단적이지만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거나 미루는 사람들은 본인도 소피에 버금가는 처지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결단의 타이밍이란 때론 핀을 뽑은 수류탄과 같다. 때가 되면 터지는 것이다. 결국 그다음은 결단이 나를 지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결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벤치마킹한 남의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내 원칙이 필요하다.

원칙은 때론 인생을 반전시키는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리게 한다. 서울 홍익대 근처에서 작은 카페 병원을 하는 김승범씨는 환자와 30분 이상 상담하고 생활용어로 쉽게 처방전을 쓰며 흰 가운을 입지 않는 젊은 의사다. 그는 시간에 쫓겨 환자를 내보내지 않고 되도록 환자가 원할 때까지 상담을 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환자의 마음을 읽는 의사. 다니던 큰 병원을 그만둘 결단을 내린 배경이다.

케냐의 빈민촌에 사는 어린 소년 사미 키타우는 구걸, 마약 배달로 연명했다. 그러다 열세 살 되던 해 길가 쓰레기통에서 발견한 책 한 권을 읽고 어두운 과거를 끊는 결단을 하게 된다. 영국 맨체스터대학 입학요강이었다. 그는 맨체스터대학에서 석사과정까지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빈민 구호 활동가로 활약하게 된다.

돌이켜 보면 국가나 기업은 물론 우리 삶의 패러다임이 전환한 계기는 누군가의 결단에 의해서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그러나 원칙 없는 결단은 도박이 될 수 있고, 원칙이 있어도 결단이 없다면 한낱 꿈으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단은 속도와 기를 필요로 한다. 결단 전의 상념과 의혹을 가차 없이 끊어내려면 말이다. 마치 내공 깊은 고수의 장검이 순간에 바람을 가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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