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트 태권V 디지털로 다시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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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달려라 달려 로보트야~ 날아라 날아 태권브이~" .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자료 담당 김세준(30)씨는 출.퇴근길이면 '태권브이' 주제가 테이프를 틀어놓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태권브이 매니어' 다. 태권브이 동호회인 '신화창조 태권브이 팬클럽' (http://www.gotaekwonv.wo.to)은 생긴 지 2년 만에 회원 수가 2천3백명을 넘어섰다. 대학가에는 태권브이 관련 자료로 내부를 장식한 카페가 생긴 지 오래다. 이달말 딴지일보에서 1탄의 VCD도 출시된다.

1976년에 대한극장에서 1탄이 개봉됐으니 벌써 25년이 흘렀지만 '태권브이' 는 여전한 인기다. 매니어들 사이에서 '태권브이' 는 한국 애니메이션의 짧았던 중흥기를 증명하는 '고전' 이 됐고, 김청기 감독은 감독 지망생들의 '우상' 으로 자리잡았다. 꼭 매니어가 아니더라도 70년대 이 작품을 보고 자란 지금의 20~30대들에게 '태권브이' 는 주제가만 들어도 가슴이 뛰는 '뭔가 특별한 것' 이다.

여기에 디지털로 새롭게 만든 90분짜리 장편 애니메이션 'RTV 2002' (가제)가 내년 개봉을 목표로 제작에 들어가 '태권브이 신드롬' 에 또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 디지털 태권브이?=신씨네와 디지털드림스튜디오(DDS)가 제작비 1백억원(애니메이션에 50억원)을 들여 공동제작한다. DDS는 TV시리즈 '미래전사 런딤' 을 선보였으며 극장용 장편 '아크' 를 제작 중인 회사다.

'RTV 2002' 는 훈이.깡통로봇 철이 등 원작의 등장인물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감각의 3D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 물론 각본도 새로 쓴다. 인물 캐릭터를 3D로 만들 것인지는 미정이다. TV용 애니메이션.PC용 게임으로도 선보인다.

신씨네와 DDS는 이달부터 넉달간 프리-프로덕션을 한 뒤 견본용 필름을 만들어 해외 마케팅에 나설 계획이다.

◇ 태권브이 약사(略史)= '로보트 태권브이' '우주작전' (76년) '수중특공대' (77년) '로보트 태권브이와 황금날개의 대결' (78년) '슈퍼 태권브이' (82년) '84 태권브이' (84년) 등 모두 여섯 편이 만들어졌다. 태권브이가 거북선에 탑승하는 외전(外傳)도 나올 정도였다.

고유의 무예인 태권도를 로봇에 접목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컬러 TV가 보급되기 전이었던 70년대의 어린이 관객을 열광시켰다.

특히 '슈퍼 태권브이' 에서는 훈이와 태권브이가 일심체가 돼 공격하는 장면이 큰 화제였다. '…황금날개의 대결' 은 김감독의 다른 작품인 '황금날개 123' 의 주인공들이 출연한 이색적인 작품이었다.

1~3편은 영어 더빙판으로 만들어 수출됐다. 주제가는 '세월이 가면' 의 최호섭씨가 불렀고, 훈이 역은 성우 안정현씨가 맡았다.

◇ 희귀한 필름=그 시절의 영화가 다 그렇지만 '태권브이' 역시 필름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다.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1~3편도 상태가 워낙 좋지 않아 상영이 불가능하다. 4~6편은 아예 행방불명이다. 당시엔 영화 필름을 보관한다는 개념이 희박해 극장 상영이 끝나면 파기되거나 분실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영상자료원에서 영화 자료 보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때문에 VCD 제작과정에서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며, 팬클럽에서 해마다 개최하는 정기 상영회에서도 비디오로만 작품을 틀고 있는 실정이다.

◇ 추억상품, 문화상품=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이 아직 개척되지 않은 상황에서 극장용 장편을 제작하겠다는 이들의 시도를 무리수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신씨네 신철 대표는 "30~40대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추억 상품' 으로 가능성이 충분하다" 는 자신감을 보인다. "실종된 한국 애니메이션사를 복원하는 기폭제" 라는 명분도 있으니 10만명을 목표로 제작 기금을 마련하겠다는 포부도 허황되게 들리진 않는다.

DDS 이정근 사장은 "어렸을 때 이태원 태평극장에서 '태권브이' 를 보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며 "초등학생인 아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진정한 '가족 영화' 로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고 말했다.

이들은 이러한 붐이 한 때의 '증후군(syndrome)' 으로 그치지 않고 '태권브이' 가 우리나라를 대표할 문화상품이 되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따라 흥행 수익으로 '태권브이 기금' 을 조성해 태권브이를 주제로 V스트리트를 꾸미고 태권도 박물관도 세울 참이다. 태권브이가 미국의 '세서미 스트리트' 처럼 부모와 아이가 추억의 공감대를 가질 만한 문화 콘텐츠가 될 수 있을지. 태권브이가 다시 한번 V를 멋지게 그리는 날이 기다려진다.

기선민 기자

*** '로보트 태권V' 김청기 감독

*** '로보트 태권V' 김청기 감독

"사람은 사라지지만 작품은 영원합니다. "

'우뢰매' '슈퍼 홍길동' 등을 발표한 90년대 초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던 김청기(60.사진)감독이 지난 5일 '태권브이' 제작발표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그간 전북 전주에 칩거하면서 유기농법을 보급하는 한농복구회 활동에만 전념해왔다.

김감독은 'RTV 2002' 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는다. 자문 역이다. "인간애가 가미된 따뜻한 원작의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도록 젊은 애니메이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겠다" 는 그는 "세월이 많이 흐른 만큼 디자인이나 줄거리 등 면모를 일신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고 지적했다.

사실 '태권브이' 가 영화로 제작되는 데는 진통이 심했다. 99년초 8년에 걸쳐 TV용.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대형 기획을 발표했지만 제작사의 약속 불이행 때문에 결국 무산됐다. 자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김감독의 신용도 적잖이 훼손됐다.

때문에 이번 '태권브이' 장편 기획이 제대로 진행될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관계자들도 상당수다. 김감독은 저작권을 두고 지난 6월까지 한 업체와 송사를 벌여 승소 판결을 받아내기도 했다.

이날 검은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은 김감독은 "1편을 만들 때만 해도 이렇게 훗날까지 사랑받는 작품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며 시종 상기된 기색이었다. 그는 태권브이 매니어들에 대해서도 "나와 내 작품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정말 기쁘다" 고 감사했다.

그는 " 'RTV 2002' 는 3D물이어서 직접 제작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셀 애니메이션은 다시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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