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잘 나갈때 겸손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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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크고 활달하고 겸손하게. "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는 여소야대 상황이 조성된 뒤 주변 인사들에게 이런 주문을 한다고 측근들이 소개했다. 당 기획위에선 李총재에게 "지금은 겸손할 때" 라는 보고서를 매일 올린다고 한다.

李총재는 5일 서울 봉천동 '나눔의 집' (도시 빈민 대상의 민간구호기관)을 찾았다. 그는 소외계층 사람들과 3시간 동안 만나 "국민의 고통을 아는 정치를 하겠다" 고 다짐했다. 70대 할머니의 생활고를 들을 때는 눈시울도 붉혔다.

李총재는 전날 총재단.지도위원 연석회의에서 "임동원(林東源)통일부 장관 해임안 통과를 승자니 패자니 하는 관점에서 보지 말라" 고 당부했다. "국민 속으로 더욱 들어가는 정치를 하는 계기로 삼자" 고도 했다.

권철현(權哲賢)대변인은 "李총재가 해임안 통과 후 '제1당의 책임' 을 자주 거론한다" 며 "여소야대 상황에선 정국 대응방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고 전했다.

한 당직자는 "실제로 자민련과 공조하면 국회의 모든 상임위에서 양당이 과반 의석을 넘는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제외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상황" 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다음주 초 시작되는 국정감사를 국정조사에 준해 할 수 있다. 정부가 껄끄러워 하는 증인.참고인을 부르고, 특위를 가동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총리 등 주요 공직자에 대한 탄핵소추안.해임건의안 제출이 언제든지 가능하다. 국회의 상임위원장도 불신임할 수 있다. 아예 특검제 상설화 등 각종 법안을 만들어 공권력 견제에 나설 수도 있다.

李총재는 "이런 여러 가지 국회의 권한 중 무엇을 양보하고 어떤 것을 얻어낼 수 있는지 선택의 순위를 만들어 보라" 고 보좌진에 지시했다고 한다. 여권의 당정 개편이 마무리되는 다음주 초께 여야간 대화 복원을 위해 영수회담을 제안할 생각이 있고, 그에 대비하는 목적이라고 한다.

김기배(金杞培)사무총장은 "여권이 여야 관계를 순리대로 풀어가면 李총재는 협조하지만 현재로선 정계 개편.야당 사정(司正).남북관계의 정략적 이용 등에 대해 의심을 버리기 어렵다" 고 말했다.

최상연 기자

사진=장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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