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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에서 날아든, 몽롱하고도 영롱한 씻김굿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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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호 04면

아이슬란드에서 분출한 그건, 분명 축복이다. 화산재 재앙 그 뜨악한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의 변방, 북극권 바로 남쪽 섬나라로 인구래야 고작 30만 남짓한 아이슬란드. 멀고도 먼 그 나라엔 귀기 어린, 포스트 록 밴드 ‘시규어 로스(Sigur Ros·뜻은 ‘승리의 장미’)’가 있다.

박진열 기자의 음악과'음락사이- 시규어 로스 2집 앨범 ‘Agætis Byrjun’ (1999)

광활한 설원을 뒤덮는 성긴 눈발, 천상에서 쏟아지는 소리의 결정체…, 시규어 로스 음악의 묵직한 잔향은 이렇다. 차곡차곡 쌓이는 악기 소리의 다발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닌다. ‘스페이스 오디세이’랄까, 우주와 대기를 끝없이 유영하는 듯한 사운드 풍경이다. 자기들끼리 노는 경지, 딱 그건데도 스르륵 빨려 들어 나 또한 이윽고 풍경이 된다. 그 옛날 지미 페이지(레드 제플린 기타리스트)가 그랬듯, 바이올린 활로 일렉트릭 기타를 난도질 치는 그 먹먹함까지, 아~ 좋다.

시규어 로스가 길어 올린 매그넘 오푸스는 단연 2집 앨범 ‘Agætis Byrjun(멋진 출발)’이다. 외계 천사(?)의 태아가 새겨진 짙푸른 커버 재킷. 몽롱하고도 영롱한 72분짜리 씻김굿이다. 진짜 영묘한 주술사는 아닐까, 한때는 의심쩍기도 했다. 시규어 로스 밴드의 목소리이자 기타맨인 욘시 비르기손(Jonsi Birgisson) 이 친구, 암만 생각해도 참 신비롭다. 한쪽 눈을 실명한 게이라는데, 그 애틋하고도 야릇한 정체성도 그렇거니와 자기가 직접 만든 ‘희망어’라는 언어까지 있으니 말이다. 그때그때 분위기를 살리는 뜻 모를 노랫말이니 괘념친 마시길(눈물 나게 아름다운 8번 트랙 ‘Olsen Olsen’).

재즈 보컬로 치면 사라 본, 엘라 피츠제럴드가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뚜비두바~ 같은 ‘스캣’이랄까. 그런데 이 맛이 만만찮다. 한 사람이 부른 게 정말 맞나 싶게 천상의 속삭임과 우울한 웅얼거림, 다중적인 팔세토(높은 음역의 가성)가 수시로 남나든다. 음산한 베이스 라인, 퍼덕거리는 드럼 비트에 꿈결 같은 키보드의 일렁임은 또 어떤가. 현악 스트링의 스산한 아름다움까지 어우러지노라면 여기가 거기, 천국 맞다. 이래서 ‘디테일은 곧 스케일’인가 보다. 더욱 반가운 건 시드 바렛 시절의 1960년대 핑크 플로이드가 스멀스멀 떠오른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트랙 ‘Svefn-G-Englar’를 빼놓을 수 없다. 지글지글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 효과음에 다다를 쯤이면 그만 숨이 턱 멎는다. 캐머런 크로가 연출한 영화 ‘바닐라 스카이’(톰 크루즈 주연·2001) 삽입곡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90년대 들어 도드라진 록 음악 장르, 포스트 록(Post Rock)은 미리 정해놓은 선율로 끌고 가는 경우가 드물다. 즉흥 연주처럼 실험성 짙은 유기체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사운드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동네다. 가령, 기타 주자라면 ‘기타의 재발명’에 도전하는 식이다. 리프(반복 악절) 중심으로 들입다 내달리기보다는 온갖 이펙트로 차근차근 솜씨 좋게 비벼냄으로써 최면적인 사운드, 노이즈의 미학을 한껏 펼쳐 보이니까. 이러니, 음악, 사람 미치는 거다.

<안된 얘기지만 우리 시대 포스트 록의 최고봉은 몬트리올 출신의 좌파공동체 밴드 ‘갓스피드 유! 블랙 엠퍼러(godspeed you! black emperor)’이지 싶다. 시규어 로스 역시 격하게 사랑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심연에서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인스트루멘털 대서사시, 20분대 대곡들 쭉 듣고 나면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극치감이랄까 엑스터시로 흥건하다.>

박진열 기자


정규 음반을 왜 앨범이라고 할까. LP판을 왜 레코드라고 할까. 추억의 ‘사진첩’이고,‘기록’이기에 그런 거라 생각하는 중앙일보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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