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문명의 충돌과 2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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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새뮤얼 헌팅턴이란 이름만 보고 기가 죽을 비(非)서구인은 이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1993년 그가 펴낸 『문명의 충돌』이 눈길을 끄는 감각적 이미지의 제목과 달리 초강대국 미국의 현실적 세계지배력을 탈냉전시대에 지속시키려는 속내를 문명이란 근사한 이름으로 포장하고 있음이 관련 학계의 비판을 통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의 주장이 전혀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폄하해선 안된다. 국제정치가 현실적으로 힘의 논리를 근간으로 이루어지고, 게다가 그의 말 속에서 미국을 이끌어가는 국제전략가들의 자국 이기주의적 냉정함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브레진스키의 『거대한 체스판』(삼인)과 궁극적 맥락이 상통하기도 하다.

신간『문명의 충돌과 21세기 일본의 선택』은 헌팅턴의 전작 『문명의 충돌』의 후속편이자 각론이라 할 수 있다.

이념의 대립이 사라진 탈냉전시대에는 문화 혹은 문명을 기준으로 대립의 양상이 변모할 것이라는 '문명충돌론' 이란 가설을 중국과 일본을 두 축으로 하여 전개될 동아시아의 미래에 적용하고 있다.

헌팅턴은 장래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큰 동아시아 세력으로 중국을 지목하고 이 가상적국에 대항하는 동맹을 강화할 필요성을 이 책에서 노골적으로 내비친다. 중국을 견제할 미국과의 동맹을 일본이 선택하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일본의 문화를 한국이나 중국 등 여타 동아시아 문명과 유사점이 없이 독특하게 고립된 문명으로 설정하는 점이 그렇다.

과거 역사 왜곡으로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왕따' 당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일본을 동아시아에서 이질적 문명으로 가정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충분하다.

더욱이 그의 가설이 비슷한 문명은 화합하고 서로 다른 문명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점을 고려할 때 동아시아에서 혼란스런 충돌을 가정하는 것은 결국 미국이란 세계 경찰의 필연적 존재의의로 귀결된다는 점을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과 일본 등 강대국 패권의 충돌이란 틈바구니에서 우리가 보다 현명한 전략적 사고를 할 필요성을 반성하게 하는 책이다.

신간은 헌팅턴이 1998년 12월 일본 동경에서 한 '21세기 일본의 선택-세계 정치의 재편성' 이란 강연록과 1999년 '포린 어페어스' 에 게재한 논문 '고독한 초강대국' 등을 함께 묶은 일본어판 발췌본을 번역했다.

이런 유의 책을 무책임하게 던져놓는 것이 아니라 균형잡힌 시각의 해제(이원덕 국민대 국제학 교수)를 달아 일반인의 이해를 높이는 점이 돋보인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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