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딸' 한비야 중국견문록 펴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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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바람의 딸’ 한비야 때문에 이 땅의 여성들이 또 한번 ‘바람나게’ 생겼다.

1996년 이후 출간된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금토)과 『바람의 딸,우리 땅에 서다』로 오지여행 붐을 일으키며 젊은 여성들을 몸살나게 했던 ‘우상’ 한비야.

해외여행 전문가의 경험을 살려 국제NGO 월드비전을 통해 구호활동을 시작한 그가 2000년 3월부터 1년간의 중국어 연수 경험을 담은 신간 『중국견문록(中國見聞錄)』을 펴낸 것이다.

사람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바탕에 깔린 '한비야식 세상 부딪치기' 와 자유롭게 살기를 전하는 이 책의 매력 역시 대단하다.

평이하면서도 연신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하는 내용, 편견없이 세상을 접하는 탄력성 등도 싱싱하다. 서른 다섯에 멀쩡한 직장을 그만두고 배낭을 쌌던 한씨의 나이는 어느새 마흔 셋. 그 적지 않은 나이에 그가 인생 전반부를 정리하고 재충전을 위해 택한 장소가 바로 중국이었다. 국제적 활동을 하는 데 중국어가 꼭 필요할 것이라는 판단이 첫째 이유였다.

때문에 얼핏 제목만 봐선 유행 품목으로서의 중국 관련서로 여겨지기 쉽지만, 이 책을 읽어보면 안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한비야라는 여성과의 만남에 있음을, 그가 보여주고 있는 21세기형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는 데 있음을 - . 불혹을 넘긴 이답게 보다 차분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럼에도 여전히 넘쳐나는 끼, 그 별난 조합이 발산하는 열정이 읽은 이에게까지 전해져 온다. 물론 한비야 팬들에게는 '기다려온 읽을거리' 이겠고….

그렇다면 이 자그마한 독신녀의 매력 포인트는 뭘까. 한비야를 이 시대 여성의 새로운 역할 모델, 21세기형 신인류로 꼽게 하는 이유를 신간에서 확인해보자.

우선 삶의 설계 기준을 '해야 할 일' 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 에 철저히 맞춰놓고 산다. 홍보회사에서 뛰쳐나와 세계여행에 나선 것이나, 늦깎이 중국어 연수생이 된 것도 그저 '미치도록 하고 싶어서' 다. 앞으로 국제NGO에서 케냐나 캄보디아의 에이즈환자 등을 위해 활동하게 될 일만 해도 그렇다.

" '괴롭고 힘들고 목숨의 위협을 느낄 만큼 두렵지만 인류 평화라는 거룩한 뜻을 위해 이 한 몸 기꺼이 바치겠다' 가 절대로 아니다. 이 일을 하면 내가 얼마나 행복할까를 생각한다. 다행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니 더욱 잘 되었을 뿐이다. "

다음은 언제나 자신감 있는, 당당한 삶의 태도다. 그것은 자신을 알기 때문에 가능하다. "내가 진정으로 무슨 일이 하고 싶은가를 알려면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것이 순서다.

그러려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야 한다. 친구를 새로 사귈 때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처럼 자기 자신과도 잘 사귀는 시간이 필요하다. " 이를 위해 그가 효과적인 방법으로 추천하는 것이 일기 쓰기와 여행이다.

또 하나, 한비야는 그 식의 '무소유' 를 즐긴다. 제러미 러프킨에 의하면 어차피 21세기는 소유의 시대가 아니라 접속의 시대라지만, 한비야는 또 다른 이유에서 "없으면 안된다고 믿는 것 중에서 정말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고 묻는다.

그런 그는 책의 곳곳에서 보이듯 '세계인' 이다. 인간에 대한 호기심과 친화력은 정말 타고 났다. 국적.인종 구분없이 모두 그의 친구가 된다. 영어.일어.스페인어, 그리고 중국어에 대한 그의 도전도 알고 보면 그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다.

『중국견문록』에도 산둥성 깡촌 출신의 커피자판기 관리인 왕샹과 그의 고향사람들, 한국전 참전용사로 조선 처녀와 꽃피웠던 풋사랑의 추억을 간직하고 사는 쟝 할아버지, 시골에서 팔려온 듯했던 고구마팔이 소녀 홍화 등 라오바이싱(老百姓)이라 불리는 평범한 중국인들의 모습이 살갑게 그려져 있다.

한비야는 또 끊임없이 자신의 '콘텐츠' 를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독서와 외국어 학습이 한 예다. 베이징에 있는 동안에도 그의 방은 그곳 한인들을 위한 도서관이 됐다. 물론 그것도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나중에 죽어 하늘에 가면 꼭 만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은 세 사람이 있다. 종이를 만든 이, 활자를 만든 이, 그리고 한글을 만드신 세종대왕. 그분들을 만날 때 좀더 떳떳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죽는 날까지 책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작정이다. 체 게바라는 게릴라전을 펴는 중에도 책을 읽었다지?" 삶에 대한 그의 통찰력이나 소화력은 바로 여기에서 나온다.

그럼 한비야는 슈퍼우먼인가□ 그건 아니다. 책에서 고백하듯 시험을 앞두고 긴장하기도 하며, 자전거 몇 대를 잃어버린 게 분하다고 남의 자전거를 훔쳐보기도 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불효를 후회하는 한 인간이기도 하다. 수다떨듯 편안한 그의 글이 가슴에 와닿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의 글을 거창하게 볼 필요는 없다. 일단 중국의 사계(四季)를 한비야라는 독특한 확대경을 통해 바라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통통 튀는 그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한데 한비야식 외국어 학습법, 중국 유학이나 연수시 유의할 점까지 새겨들을 수 있으니 금상첨화 아닌가.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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