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지원금에 목숨거는 오페라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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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K오페라단장님께,

올 가을 서울 무대에서만 무려 15편의 오페라가 올라가는데도 구경만 하고 있자니 착잡한 느낌이 드실 겁니다.

문화관광부와 서울시의 '무대공연 작품 지원사업' 심사에서 탈락의 고배를 드셨다고요. IMF관리체지 이후 민간기업의 오페라 협찬이 대폭 줄어들어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 없이는 오페라 상연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지요. 음악 분야에서 올해 서울시 지원금을 받는 37건 중 11건이 오페라입니다.

보통 오페라 한 편 제작에 4억원 정도는 필요한데 지원금은 5천만~1억원이니까 협찬을 받기 어려운 요즘 그게 어딥니까. 그래서인지 음악계에서 지원금 받는 '비법' 얘기가 나돌더군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창작 오페라로 승부수를 띄우는 겁니다. 막대한 정부예산을 들여 '황진이' '이순신' 을 외국 무대에도 올리지 않았습니까. 재공연이라도 베르디.푸치니보다는 유리합니다.

1999년 이후 지원금을 받은 오페라 24건 중 창작 오페라는 '김구와 상해임시정부' '무등둥둥' '류관순' '춘향전' '꿈꾸는 사람' 등 8편. 그 중 두편은 재공연이었습니다. '녹두장군' '안중근' 도 서울과 지방에서 여러 차례 공연됐지요.

순국열사나 근.현대사의 큰 사건을 다룬 내용이면 좋습니다. 심사과정에서 예술적 완성도보다 주제의식이 중요하니까요. 순국열사도 지방 출신이면 지자체는 물론 국회 예산심의를 통과하기 쉽습니다. 유명 정치인을 공연 추진위원으로 위촉하면 공익기금 유치도 수월합니다.

창작 오페라 초연은 물론 백번 반가운 일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지원체계로는 충분한 준비기간을 갖고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아요.

작품 목록은 늘어나는데 정작 이거다 할 만한 것을 꼽아보라면 쉽지 않다는 얘기예요. 지원금을 겨냥한 부실 작품만 늘어날 뿐이지요. 그러니 관객 호응도 떨어질 수밖에 없고요. 너무 씁쓸한 얘기였나요. 하지만 그게 현실 아니겠습니까.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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