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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66)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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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66. 불필스님의 3년 結社

불필스님은 1961년 3월에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정식 비구니계를 받았다. 통도사 금강계단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단(壇)으로 이 곳에서 계를 받는 것은 부처님 앞에서 계율을 지킬 것을 맹세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비로소 정식으로 비구니계를 받았으니 그 때부터 불필스님은 백졸스님과 함께 본격적인 운수납자(雲水納子.검은 옷을 입고 구름처럼 물처럼 떠도는 수도승)의 길로 나섰다. 경북 문경 대승사 묘적암, 경남 합천 해인사 국일암, 지리산 도솔암 등을 두루 돌아 다녔다.

그리고 성철스님의 지시에 따라 1969년 은사 인홍(仁弘)스님이 있던 석남사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석남사 심검당에서 3년 결사(結社.3년간 일체 외부로 나가지 않고 선방에서 수행하는 것)를 시작했다. 인홍.장일.성우.혜관 같은 노스님들과 법희.법용.백졸.혜주스님 등 젊은 비구니들이 함께 결사에 참여했다. 69년 동안거 때부터 매일 새벽 3백배를 했다.

"서로 약속을 하고 정진을 하는데, 같이 오래 살다보니 세대간에 조금씩 보이지 않는 갈등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뭐 심각한 것은 아니고, 예를 들면 절을 빨리 하고 느리게 하는 차이 같은 것이지요. "

3백배를 하는데, 노스님들이 오히려 젊은 스님보다 빨랐다. 노스님들이 몇 번 "맞춰서 빨리 절하라" 고 말했지만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어느 날 혜주.법용.불필스님이 짜고서 절을 더 느리게 하는 바람에 예불참회가 5분이나 늦게 끝났다. 어른 스님들이 가만히 두고볼 리가 없다. 불필스님의 은사인 인홍스님이 중간에서 제일 곤란해 했다.

"어느날 인홍스님이 우리 셋을 부르더니 옥류동으로 산책을 가자고 하는 거예요. 인홍스님이 먼저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나섰지요. 뭔가 어색했지만 별 생각 없이 뒤를 따르는데, 인홍스님이 갑자기 돌아서면서 지팡이로 사정없이 내려치는 거예요. "

성철스님의 매질로부터 도망다니는데 이골이 나 있던 불필스님은 재빨리 달아났다. 대신 다른 스님들은 대나무 세례를 받았다. 그렇게 사소한 일상에 갈등하면서도 깨달음을 얻겠다는 마음은 한결 같았다. 3년 결사가 끝나갈 무렵이다. 마지막 1백일간 용맹정진(잠을 자지 않고 수행하는 것)에 들어갔다.

"밤에 졸리면 밖에 나가 산길을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전등도 없던 시절이라 사방이 캄캄한데 산길을 혼자 걷다보면 바로 옆에 큰 짐승이 지나가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때도 있었지요. "

없는 머리칼이 쭈뼛해질 정도로 무서운 밤길이었지만 졸음보다 무섭지는 않았다. 그런 무서움이 들 때면 "내가 너를 해치지 않았는데, 네가 나를 해칠 까닭이 뭐가 있고, 또 무엇이 그리 무서울 것인가" 하는 마음으로 견뎠다.

그렇게 동물적 육감을 다스리다보니 반대로 저쪽 짐승이 놀라 피해 가곤 했다. 성철스님은 수도승으로서의 모진 노력을 늘 강조하시던 분이다. 비속 속세의 인연을 떠났다한들 아버지 성철스님의 가르침은 늘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되는 기라. 노력 없이는 아무 성공도 없데이. "

72년 가을 3년 결사를 무사히 마쳤다. 결사의 리더격인 인홍스님이 고희(古稀.일흔살)를 맞아 주지 소임을 법희스님에게 넘기고, 본인은 다시 정처 없는 운수납자의 길을 가겠다며 칠불암으로 떠났다.

석남사에 남은 불필스님은 청조스님 등 다른 7명의 스님들과 함께 심검당에서 1백일 장좌불와(長坐不臥.눕지않고 수행하는 것)를 시작했다. 가능한 모든 정진법에 도전하는 치열한 구도의 세월이었다.

당시 심검당에 두 그루의 보리수나무를 심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 한 그루가 크게 자라 봄이면 꽃향기를 가득 내뿜고 여름이면 무성한 나뭇가지로 더위를 식혀준다.

그리고 가을이 되어 맺힌 열매를 따서 실로 꿰면 아름다운 보리수 염주가 된다. 어린 나무가 크게 자란 것을 볼 때마다 불필스님은 당시 함께 정진하던 스님들이 그리워진다고 한다.

초발심(初發心), 출가할 당시의 뜨거운 열정을 간직하고 정진했던 그 시절은 출가승이면 누구나 잊지 못하는 순간들이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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