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명 명필름 대표·이미연 감독 '손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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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대학 시절 주변 친구들은 그들을 '고목나무에 파리' 라고 불렀다. 키가 큰 이미연 감독과 키가 작은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똘똘 뭉쳐 다니는 모습을 보고 지어준 별명이다.

그들은 4년 내내 손을 잡고 캠퍼스를 누볐다. 프랑스 문화원은 그들의 단골 장소. 1주일에 두 번 이상 들러 영화에 흠뻑 빠졌다. 저녁에는 종종 디스코텍에서 젊음을 즐겼다. 심대표는 붉은 바지, 이감독은 흰 바지를 즐겨 입었다.

두 사람은 동덕여대 국문과 82학번 동기. 친하게 지낸지 어느덧 20년이 됐다. 그 20년을 기념하듯 그들이 또 손을 잡았다. 이감독의 데뷔작 '버스, 정류장' 의 제작과 프로듀서를 심대표가 맡은 것이다.

지난 27일 서울 혜화동의 명필름 사옥. '공동경비구역 JSA' 로 살림이 핀 명필름이 2층 양옥을 개조해 새 둥지를 튼 이 곳에서 '버스, 정류장' 의 제작 발표회가 열렸다. 학창 때를 연상케 하듯 심대표는 붉은색, 이감독은 흰색 남방을 걸쳤다.

이들의 결합은 우리 영화계에선 드문 여성 제작자와 여성 감독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최근 여성 영화인의 활약이 눈부시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국 영화사 80여년에 여성 감독은 아직 열명을 넘지 못한 상황이다.

게다가 절친한 친구로, 그리고 영화적 동지로 서로를 밀고 당기며 지내온 그들이라 의미가 각별하다.

"연애 관계까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습니다. 지금까진 친구라서 영화 준비가 매끄러웠는데…. " (심대표)

"강의도 빠지며 영화를 보러 다녔어요. 재능 있는 프로듀서를 만난 제가 오히려 행운이죠. " (이감독)

이들이 영화에서 만난 것은 사실 처음이 아니다. 명필름이 제작한 '조용한 가족' (1998)에서 이감독이 프로듀서를 했다. 그런데 이번엔 이감독이 직접 메가폰을 잡은 것.

심대표는 '코르셋' (96)을 필두로 '접속' (97), '해피엔드' (99), '섬' 'JSA' (2000), '와이키키 브라더스' (2001)등을 만들어온 여성 제작자의 선두주자. '초록물고기' (96)의 스크립터로 영화 현장에 뛰어든 이감독은 '반칙왕' 의 프로듀서도 거쳤다.

"미연이는 대학 때 연극반 활동을 했습니다. 졸업 후엔 극단에 들어갔죠. 배우 경력도 있는 감독이라 연기지도는 확실할 겁니다. 또 90년대 초반 4년 동안 프랑스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했기 때문에 감독으로서 손색이 없습니다. " (심대표)

"재명이는 그림에 재능이 있어 제 공연의 포스터와 팸플릿 등을 그려주곤 했어요. 졸업 후 바로 서울극장에 입사해 공짜 영화 많이 봤습니다. 회사 일이 바빠 다른 프로듀서처럼 계속 붙어다니지 못하는 게 불만이라면 불만입니다. " (이감독)

'버스, 정류장' 은 서른두살의 보습학원 국어강사(김태우)와 열일곱살 여고 1년생(김민정)의 만남을 그릴 독특한 멜로물. 다음달 초 촬영에 들어가 내년 초에 개봉할 예정이다.

"겉모습에 치우지지 않는 영화, 캐릭터가 살아 있는 간결한 영화, 내면 묘사가 뛰어난 영화" 가 이들이 내세우는 공통 분모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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