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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과 ‘격식 없는 사이’ 김격식 서해 4군단장 내려간 뒤 도발?

중앙일보

입력

월간중앙한때 좌천설이 떠돌았던 북한의 김격식 전 총참모장. 이번 ‘천안함 침몰사건’의 원인이 북한의 소행이라면 현재 4군단장인 그의 역할이 매우 컸을 것으로 관측되는데…. 평양과 해주를 오갔을 북한의 도발전략을 파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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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7년 4월 23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가운데)이 조선인민군 해군 제790 부대를 시찰했다고 밝혔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 사람이 김격식 당시 군총참모장(현 4군단장)이다. 2 김영철 정찰총국장.

지난해 2월 평양 중심부인 중구역에 자리 잡은 김정일 집무실. 국방위원장 겸 군 최고사령관인 김정일 앞에 날카로운 눈매의 노 장성이 서 있었다. 그의 어깨에는 4성 장군인 북한군 대장 계급이 달려 있었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인 김격식(70) 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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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007년 4월 우리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총참모장 자리에 올랐다. 전임자인 김영춘 차수에 이어 북한 육·해·공군을 총괄지휘하는 위치를 차지한 것이다. 긴급호출을 받고 집무실에 들어와 부동자세로 서 있는 그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입을 열었다. “김 동지, 4군단을 좀 맡아줘야겠어.”

뜻밖의 말에 김격식은 당황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전군을 지휘하는 위치에 있는 그에게 다시 일선 군단장을 맡으라는 말이었다. 1992년 4월 별 셋에 해당하는 상장(한국군의 중장)을 단 그는 2년 뒤 북한군 2군단장을 지냈다. 보직으로 따지면 한 계급 강등된 자리로 부임하라는 얘기였다.

전임자인 김영춘은 무려 12년을 총참모장 자리에서 보냈다. 김격식의 얼굴을 살피던 김정일 위원장은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동무를 강등시키는 게 아니야. 서해 쪽이 중요하니까 맡기는 거지. 잘하고 돌아오라우.”김격식은 그 길로 짐을 싸 4군단 사령부가 있는 황해도 해주로 향했다.

2년 가까운 총참모장 시절 그는 군부의 최고 실세로 자리를 굳혔다. 김정일의 군부대 방문에 빠짐없이 수행했고, 공연 관람이나 외국 군사대표단 만남에도 배석했다.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할 때도 그는 군부 핵심 실세들과 함께했다.

김정일은 당·정·군 핵심 간부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나와 김격식은 격식이 없는 사이야”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말을 했다. 김격식의 출세가도를 가로막을 장애물은 없어 보였다. 얼마 후 그의 부임 관련 첩보를 인용한 한국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김격식의 강등 사실에 초점을 맞춰 배경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우리 정보당국의 판단은 달랐다. 무엇보다 ‘김정일과 격식이 없던 그가 왜 갑자기 4군단장으로 옮겼냐’하는 게 의문이었다. 북한군 4군단은 최전방 휴전선에 인접한 4개 군단 중 하나다. 동부전선부터 서부 쪽으로 기계화 군단인 제1·5·2·4군단이 늘어서 있으니 가장 서쪽을 지키는 부대다.

이곳은 경기도와 인천 외에 백령도와 연평도 등 서해 5도를 마주하고 있는 요충지다. 유사시에는 서해 5도를 점령하고 김포반도를 통해 서울을 우회해 후방을 점령하는 게 임무다. 대북 첩보망에는 그가 특별한 과오를 저지른 게 없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러던 중 한·미 정보당국의 감청망에 김격식의 4군단행 배경을 판단할 수 있는 결정적 정보가 포착됐다.

이른바 특수정보인 ‘S.I.(Special Intelligence)’다. 그 내용은 김정일이 “잘하고 돌아오라”고 격려한 대목이다. 이 짤막한 발언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유출자를 찾아내기 위해 정보당국이 한바탕 소동을 벌일 정도로 민감한 정보였다.

‘김정일과 격식 없던’ 김격식의 특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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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로미오급 잠수함.
김정일의 발언 내용을 파악한 군 당국은 긴장했다. 남한과 접하고 있는 서부전선 요충의 ‘분계연선(전방)’에 최고 심복인 김격식을 내려보낸 김정일의 포석을 읽어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긴장의 파고가 높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상의 분쟁을 예고하는 것은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격식의 해주행 1년여 만인 3월 26일. 서해 백령도에서는 한국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1200t급 전투함정이 순식간에 두 동강 난 채 가라앉았고 46명의 수병이 가라앉은 선체와 함께 실종·사망했다. 해군 사상 최악의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됐고 군 당국과 국민 모두 충격에 빠졌다. 사고가 발생한 그날 밤 서울 시내 몇 곳에서는 청와대와 국방부·통일부 당국자들이 안보부처를 자문하는 대학 교수나 전문가와 술자리를 갖고 있었다.

별다른 상황이 없는 여유로운 금요일 밤을 맞아 저녁식사를 한 뒤 노래방 등으로 옮겨 흥을 돋우고 있던 시각이다. 급작스러운 비상호출을 받은 안보부처 관계자들은 상황 전파가 상대적으로 빨랐던 청와대 쪽부터 하나둘 순차적으로 자리를 떴다. 궁금해하는 교수·전문가에게 이들은 “우리 함정이 가라앉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으로부터 한 방 맞은 것 같다는 겁니다”라고 귀띔했다. 복수의 전문가로부터 확인한 데 따르면 군 당국의 최초 상황 보고를 통해 청와대가 외교안보수석실 등의 관계자에게 처음 전파한 내용은 ‘북한의 공격’이란 판단이었다. 사고 직후 인근 해역에 있던 같은 급 초계함 속초함이 북쪽의 미확인 목표물을 향해 76mm 함포로 사격을 가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북한군에 의한 소행 가능성이 급격히 떠올랐다.

이날 밤 10시께 청와대 지하 벙커에 긴급소집된 안보관계장관회의는 군 당국의 상황 보고와 구조작전에 맞춰졌다. 이튿날 오전 7시30분, 2차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 철저하고 신속하게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소행을 단정하지 않는 대신 다양한 사고 원인을 파악해보라는 얘기였다.

이후 침몰 원인을 둘러싼 다양한 관측이 제기되면서 북한이 저지른 도발이라는 초기의 판단은 세력이 꺾이는 듯했다. 사고 해역에 미확인 암초가 있었다거나 노후한 함정이라는 등의 주장이 이어지면서 내부 요인에 의한 폭발 가능성까지 제기됐다. 기뢰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이마저 북한의 의도적 도발이라기보다는 과거 설치해뒀던 것이 조류에 떠내려와 부닥쳤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북한, 잠수함·정 모두 70척 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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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9월 강릉 앞바다에서 좌초된 채 발견됐던 북한 상어급 잠수함. 구경 533㎜ 어뢰 4기를 장착하고 있었고, 최장 20일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물 위에서는 2700㎞ 이상의 항속거리를 갖지만 수중 항속거리는 확인되지 않는다.
김태영 국방장관도 3월 29일 국회 국방위에서 “북한이 6·25 때 4000여 기의 기뢰를 옛 소련으로부터 수입해 와 3000여 기를 동해와 서해에 설치했다”며 “북한 기뢰가 흘러 들어와 우리 지역에 있었을 수 있다”고 답했다. 여기에 우리 해군이 설치한 기뢰가 폭발했을 가능성까지 제기됐고 한·미 합동군사연습 중이던 미군 함정이나 잠수함이 오폭했다는 가설까지 일각에서 들고 나오면서 사고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일었고 사태는 미궁에 빠지는 듯했다.

하지만 사고 당시 북한의 서해기지에서 잠수함·정과 반잠수정의 활동이 우리 감시망에 포착된 사실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다시 급부상했다. 김학송 국회 국방위원장은 4월 5일 북한군 서해함대사령부가 있는 남포 아래 비파곶에서 상어급 잠수함이 기동한 사실을 언론에 공개했다.

합동참모본부로부터 개별 브리핑을 받은 비공개 정보였다. 그는 “지난달(3월) 23일 6회, 24일 3회, 26일 1회 등 비파곶에서 상어급 잠수함의 기동이 있었다”며 “2대가 기동 중이었는데 1대는 통신상 비파곶 인근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으나 다른 1대의 행방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이 잠수함이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국방위원장의 부적절한 군사기밀 공개라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로 민감한 내용이란 점에서 언론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세간의 관심은 반(半)잠수정을 포함한 북한의 잠수함·정 공격 능력에 쏠렸다. 북한은 로미오급(1800t)과 상어급(300t급) 잠수함을 주력으로 한다. 1996년 9월 강릉으로 침투했던 상어급 잠수함은 길이 34m에 승조원 11명, 간첩 등 비정규 요원 10명이 승선할 수 있는 규모다.

553㎜(직경) 어뢰 4발도 장착된다. 잠수정의 경우 10명 이내 승조원이 타는 소규모로 북한이 보유한 유고급 잠수정은 65t에 길이는 20m였다. 자체 무장을 하거나 전투력을 갖추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적의 항만이나 해역을 정탐하거나 간첩을 비밀리에 침투시키는 게 주 임무다. 잠수함과 잠수정은 선체 크기나 운용 목적에 따라 구분된다.

통상 200t 이상의 대형일 경우 잠수함으로, 그 이하는 잠수정으로 나뉜다. 구축함을 비롯한 수상함과 달리 수면 아래에서 은밀하게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술적 가치가 매우 크다.

반잠수정은 탐지가 쉽지 않은 게 특징이다. 선체가 작고 물 위로 60㎝ 정도만 노출한 채 고속운항하기 때문이다. 선체에는 스텔스 기능의 특수도료가 처리돼 레이더 탐지와 추적이 어렵다. 1998년 12월 여수로 침투하다 격침된 북한의 반잠수정은 길이 8.7m에 무게 5t이었다. 5~6명의 간첩·공작원이 타고 최대 시속 40~50노트(74~92㎞)로 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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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 속초 앞바다에서 꽁치 그물에 걸려 잡혔던 북한 유고급 잠수정. 길이 20m, 폭 3.1m, 높이 4.6m, 항속거리 140~150㎞로 구경 406㎜ 어뢰 2기를 장착하고 있었다.

연이은 패퇴…정규 전력으로는 불감당

2005년에는 서해 남포기지에 길이 30m의 신형 잠수정이 포착돼 우리 정보당국을 긴장시킨 바 있다. 국방백서 2008년판에 따르면 북한 해군은 잠수함과 잠수정을 모두 70척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군 당국은 이런 잠수함·정 전력을 토대로 한 북한의 도발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더 확실한 증거를 잡기 위해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북한 말고 우리 함정에 이런 짓을 저지를 세력이 누가 있느냐”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이런 맥락에서 가장 현실적인 북한 잠수함 또는 잠수정에 의한 어뢰 공격 가능성을 유력하게 제기한다. 은밀한 기동이 가능한 이들 잠수전력을 투입해 천안함의 항로에 접근해 어뢰 공격을 가했을 것이란 지적이다.

반잠수정에 의한 타격 가능성도 거론된다. 사고 해역의 조류가 빨라 반잠수정의 기동이 쉽지 않다는 제한이 있지만 특수훈련을 받은 북한의 공작원들이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어뢰를 기뢰로 개조한 사출형 기뢰(CAPTOR Mine:Capsule Torpedo Mine)에 의한 폭발 가능성도 군 내에서 나왔다.

어뢰를 캡슐과 같은 긴 통 속에 넣어 만든 무인작동형 기뢰를 말한다. 바닷속에 투입된 사출형 기뢰는 평시 해저에서 통 속에 들어있다가 물 위로 함정이 지나가면 스크루 소리를 감지해 자동발사된다는 것이다. 군 당국은 중국 어선 등으로 가장한 북한 공작선이 몰래 사고 해역에 이 기뢰를 던져 넣고 갔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당국은 특히 북한 군부의 보복심리가 작용했을 가능성을 주시한다. 정보당국 관계자는 “1999년 6월 첫 연평해전에서 패한 북한은 절치부심해 꼭 3년 만에 2002년 우리 해군의 참수리 357정을 기습공격으로 격침시키고 6명 사망, 18명 부상이란 피해를 줬다”고 강조했다. 해군 2함대는 지난해 11월 10일 북한이 대청해전에서 패퇴하고 물러난 이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우리 군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NLL을 넘어왔다 포격을 받고 무기력하게 되돌아가는 망신을 당한 북한 해군이 어떤 식으로든 보복을 가할 것이란 점에서다. 군 안팎에서는 기동성 높은 고속정과 압도적 화력의 초계함에 눌린 북한이 정규전력으로는 우리 해군을 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비정규전 방식의 타격전술을 개발해 실행에 옮겼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 들어 서해 NLL 인근 수역에 대한 해안포 사격 등으로 위협 수위를 올린 북한이 초강경수를 뒀다는 것이다. 초계함을 전진배치하는 우리 해군의 전술 변화에 자극받은 북한이 천안함에 대한 직접 타격으로 보복한 것이란 관측도 있다. 북한이 패퇴 사흘 뒤인 11월 13일 “무자비한 군사적 조치”를 위협하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었다는 점도 거론된다.

성명·담화가 아니라 장성급 회담 북측 단장이 남측에 전화 통지문을 보내는 ‘직접 대화’의 형태를 띤 것도 이례적이었다. 이는 대청해전 4시간 만에 북한군 최고사령부 성명을 통해 “사죄와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고 나선 데서 훨씬 강도를 높인 것이었다. 대청해전 발생 보름을 넘긴 11월 27일,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해군 587연합부대 지휘부를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보 관계자들은 일제히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가 방문한 부대는 바로 북한군 서해함대사령부였다. 부대 노출을 꺼리기 위해 사용하는 단대호(單隊號·단위부대에 부여된 숫자 명칭)지만 우리 정보당국은 이미 ‘시인(정보 관계자들이 ‘확인된 정보’라는 의미로 쓰는 표현)’해놓은 부대였다. 김정일은 2002년 2차 연평해전 때도 8개월 만에 이 부대를 찾아 격려한 적이 있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이 “전투기술기재들과 해병들의 훈련을 보시면서 올해 훈련강령 집행과 새 년도 훈련준비 정형을 구체적으로 요해(파악)했다”며 해군 무력을 강화하기 위한 과업을 제시했다고 소개했다. 이날 방문에는 김영춘 인민무력부장, 김정각 총정치국 제1부국장, 이영호 총참모장, 현철해·이명수 대장 등 북한군 수뇌부가 총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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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남해안 침투 도중 격침된 북한 반잠수정을 1999년 3월 17일 거제도 남방 100㎞ 해상에서 해군의 해난구조대원들이 인양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월 16일 남포시 해안에서 육·해·공 합동훈련을 참관한 점도 관심거리다. 한·미 정보당국은 당시 해군 함정의 등장에 주목했다. 한겨울에는 함정을 동원하지 않지만 이번의 경우 김 위원장이 “바다의 얼음을 깨고라도 군함을 동원하라”고 지시했다는 첩보다.

남포에는 NLL 수역을 관할하는 서해함대사령부가 있다. 정부 당국자는 지난해 11월 사령부 방문에 이어 “서해 NLL과 해군력의 중요성을 강조한 행보”라고 평가한다. 김정일이 훈련을 지켜보는 장면을 전송한 조선중앙통신의 사진에 김명국 작전국장이 대장에서 상장으로 한 계급 강등된 계급장을 달고 있는 모습이 드러나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김정일 위원장이 군 인사를 놓고 얼마나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는지 보여준다”며 “노동당과 군부의 간부를 철직(해임)하거나 강등한 후 복권을 위해 최고의 충성을 다하게 하는 수법”이라고 말했다. 총참모장에서 군단장으로 내려간 김격식이 복권을 위해 어떤 공적을 쌓아야 하는지는 권력의 속성을 잘 아는 그 자신이 충분히 파악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다.

대남 강경대응 주도해온 김영철 상장

북한 언론이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김정일의 서해함대사령부 방문과정에서 김격식이 어떤 식으로든 김 위원장과 직접적인 교감을 가졌을 것이란 게 정보당국의 판단이다. 북한군 사정에 밝은 핵심 관계자는 “통합지휘체계를 가진 북한군의 경우 지상군 4군단장이 필요에 따라 해군 2함대사령부나 예하 특수부대 등을 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특히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지시해 총참모장 출신을 군단장으로 내려보낸 만큼 서해지역에서 막강한 힘이 김격식에게 실렸을 것이란 얘기다. 김격식의 인물 파일에는 그가 1996년 9월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을 지휘한 김대식 북한군 정찰국장의 사촌형이란 점이 부각돼 있다. 정보당국은 김격식 4군단장이 김정일이 자신에게 내린 모종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새로운 대남도발 전략을 구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유사시 사곶에 기지를 둔 북한 해군 8전대의 고속정 등을 동원한 대결을 지원 또는 지휘할 수 있는 권한까지 그에게 부여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해주는 서해 NLL 지역에서 남·북한 군사 충돌이 발생할 경우 북한 함정을 지원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다. 사정거리가 90㎞에 이르는 지대함 미사일이나 100mm 함포가 진을 치고 있어 우리 해군 함정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

군 관계자는 “해주항 일대와 인근 등산곶·사곶 기지에는 사정거리 95㎞인 실크웜 지대함 미사일이나 스틱스 미사일 수십 기가 배치돼 있다”며 “어뢰정과 경비정 수십 척도 신경이 쓰이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김격식의 지휘 아래 실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인물로는 북한 군부 대남통 김영철 상장이 꼽힌다.

그는 지난해 대남 공작부서의 총책임자에 임명된 것으로 정보당국은 확인했다. 통일부가 최근 펴낸 <2010 북한 주요 인물>에는 김영철의 직책이 ‘인민군 정찰총국 총국장’으로 올라 있다. 정찰총국은 남파간첩 운용 등을 맡은 노동당 작전부와 35호실을 인민무력부 정찰국과 합친 조직이다.

김영철은 2008년 12월 개성공단 출입 제한 등 대남 강경대응을 주도한 인물이다. 1990년부터 남북 고위급회담에 나왔고 2007년 말까지 남북 장성급회담 북측 대표를 맡은 북한 군내 대표적인 대남통으로 알려져 있다. 대남 공작부서인 노동당 대외연락부는 내각 산하 225부로 개편됐다. 대외연락부장이던 강관주는 ‘내각 225부장’을 맡았다.

당국자는 “노동당 대남부서들이 과거 테러와 납치·파괴공작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자 조직 개편을 꾀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표면적인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이들 기관의 고유기능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고 있을 것이라는 게 군 당국의 판단이다. 과거 잠수함·정을 통한 대남 침투공작은 인민무력부 정찰국이 맡았다.

여기에는 모두 4개 저격여단과 5개 정찰대대가 있다. 국군 월북자로 구성된 907부대나 북한군 유일의 여군 특수공작대가 편성돼 있는 38항공육전여단도 이곳 소속이다.

노동당 내에도 작전부·통일전선부·사회문화부·대외정보조사부 등 이른바 ‘대남 4인방’이 각기 맡은 바 대남공작 업무를 수행했다. 특히 당작전부 산하에는 육상 2개소(개성·사리원), 해상 4개소(남포·해주·원산·청진) 등 모두 6개의 연락소를 두고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 대남공작조직이 군 정찰총국에 모두 통합됐는지 여부 등을 파악하기 위해 대북 첩보망을 가동 중”이라고 말했다.

김정일의 직접 지시 없이는 불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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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최근 도입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반잠수정 그래픽.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북한의 소행이라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 지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고지도자이자 군통수권자인 김정일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올 사안을 몰랐을 리 없을 것이란 추론이다.

2010년 3월 26일 밤 천안함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려면 인양된 선체를 살펴야 한다. 함수와 함미로 두 동강 난 절단면은 침몰의 원인을 밝혀줄 결정적 열쇠다.

미국뿐 아니라 이번 사태에 비상한 관심을 보인 관련국들의 군 관계 요원과 전문가들이 나섰다. 북한의 도발로 드러날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다. 북한은 사실상 국지전에 준하는 도발을 한 국제사회의 탕아로 낙인 찍힐 게 분명하다. 남북관계는 전면동결이란 길을 가야 할지도 모른다. 대북 보복을 둘러싼 남한 내 논란도 거세지겠지만 이명박 정부의 운신의 폭이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의 안정을 바라는 미국과 중국 등의 이해관계 속에서 대응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1968년 ‘1·21 청와대 습격사건’에 대해 김일성이 “일부 좌경맹동주의자의 행동”이라며 사실상 사과의 뜻을 밝힌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북한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렵다.

일각에서는 침몰의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이 미궁에 빠질 가능성도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누가 어떻게 도발했는지를 밝히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특별한 돌발변수가 부각되지 않은 한 여전히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자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글 이영종 중앙일보 정치부문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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