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오프라 윈프리의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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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47)는 어머니에 대해 노여움과 적대감이 깊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어머니가 '그 성적 학대' 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 아홉살 때 사촌오빠(19)에게 처음으로 강간을 당한 이후 '온가족의 친구' , 심지어 믿고 따랐던 친척 아저씨에게마저 성폭행을 당했던 그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원망을 접으며 털어놓은 말이다.

*** 아물지 않은 성폭행 상처

윈프리는 "순결을 잃은 것이 슬픈 이유는 모든 것이 그 전과 결코 같아지지 않는다는 것" 이라고 회상했다. 임신의 공포에 떨며 배가 살살 아프기만 해도 혹여 아이가 나오려나 하여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아이를 숨길 곳을 궁리하고, '아마도 내 이마에 더러운 아이라고 쓰여져 있나 보다' 고 매순간 자신을 질책하면서 살아가는 아홉살난 꼬마. 그가 바로 어린 윈프리였다.

결국 그는 집 밖으로 떠돌며 문란한 10대를 보낸다. "성적학대로 인한 수치심.죄책감.두려움 때문" 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그를 끈질기게 괴롭힌 것은 자책감이었다. 어른들이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기보다 성범죄에 희생된 아이에게 잘못이 있다고 믿게 만든 까닭이다. 그의 가슴엔 성폭행을 한 뒤 "네가 그것을 원했어" 라고 했던 친척 아저씨의 말이 주홍글씨처럼 아로새겨져 있다.

"누군가 어린 당신의 젖꼭지를 만지작거린다고 해요. 어떤 육감적인 느낌은 오게 마련이죠. 당신은 그것이 자기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감각적 흥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그 느낌을 좋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되죠. " 그러나 마침내 윈프리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어린이는 아무 잘못이 없어요. "

청소년보호위원회가 30일 청소년대상 성범죄자 신상을 공개한다. 현재 행정소송을 진행 중인 1명을 제외한 1백69명의 명단이 관보와 정부중앙청사 및 16개 시.도 게시판(1개월), 청소년보호위원회 인터넷 홈페이지(6개월)에 오른다.

신상공개가 초읽기에 들어서며 곳곳에서 갑론을박(甲論乙駁)이 한창이다. 내 주위에서도 "이중 처벌이 아니냐" 며 "차라리 벌칙을 강화하는 것이 옳다" 고도 하고, "우리 사회의 정서로 볼 때 가족까지 손가락질 받을 게 뻔하다" 며 비공개를 역설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재판받는 동안 어차피 주위사람들에게는 다 알려졌을 테고 고작 시.구 정도의 주소지에 직종을 밝히는 것뿐" 이라고 시큰둥해한다.

나는 우리처럼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신상공개가 '공개 망신' 이 돼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지고, 혈연을 중시하는 인습으로 가족 전체가 함께 손가락질을 받는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신상공개 반대자의 견해에 동의하면서 역설적이지만 그 점 때문에 명단공개가 빗나간 성의식을 바로잡는 최후의 보루라고 믿는다. 불행하게도 성범죄자의 인권침해를 딛고 서야 할 정도로 우리 사회는 청소년 성범죄 불감증에 빠져 있다.

5년 만에 성폭력 범죄가 60.5%나 증가하는 나라, 그 중에서도 13세 미만 청소년에 대한 강간사범이 2년 만에 3배에 가까이 늘어난 나라, 10대 남성이 여성청소년의 매춘 알선에 나서는 나라. 이런 가운데 10대 미혼모가 늘어가고 후손을 책임진 여성들의 몸과 정신이 망가지고 있다.

*** 오죽하면 신상공개 할까

성매매에 나서는 청소년 가운데 상당수는 성폭행 경험을 가진 이들이라고 관계자들은 말한다. 천하의 윈프리가 50을 바라보면서도 "과거도, 지금도 그 기억에 의한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고 고백했을 정도로 성폭행으로 인한 상처는 깊다.

하물며 다른 여성들은 오죽 하랴. 직업적일 정도로 성을 판매하는 청소년이라 해도 이들보다 이들의 성을 사는 어른이 더 나쁠 수밖에 없는 이유다.

46년 전 법원은 수십명의 여자를 농락한 박인수에 대해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 는 판결을 내렸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예방을 위해 법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인권만을 보호한다" 고 말해야 할 때다.

홍은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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