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신약' 글리벡 효능 속속 밝혀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에게 '기적의 신약' 으로 불리는 글리벡(제조사 스위스의 노바티스).

환자들의 강력한 요구로 개발 3년만에 먼저 시판 허가를 받으면서 임상 연구가 뒤를 쫒고 있다. 따라서 환자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도 속속 발표되는 임상 효과들.

지난 25~28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린 제31차 국제 실험혈액학회를 통해 글리벡의 최신 연구동향과 임상 성적을 알아본다.

◇ 새로 밝혀지는 임상 효과=글리벡의 장점은 백혈병을 일으키는 암 유전자(Bcr-Abㅣ)의 활동을 막아 근본적으로 암세포 생성을 차단하는데 있다.

온몸에 융단 폭격을 가하는 기존 항암치료제들과는 달리 암세포를 생산하는 공장 만을 파괴하는 표적 치료를 하는 것.

영국 왕립의과대학 존골드만 교수가 도쿄 쎄미나에서 발표한 논문은 글리벡의 이러한 장점을 보여준다.

그는 현재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에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테페론α로 치료되지 않는 환자 5백32명에게 글리벡 4백㎎을 투여했다. 그 결과 91%의 환자에서 혈액학적 반응이, 이중 55%의 환자에선 세포유전학적인 완전 반응이 나타났다.

세포유전학적인 반응은 암세포를 생산하는 공장까지 파괴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완치를 기대해도 좋다는 뜻.

그는 "대부분이 시한부 삶을 살았던 환자들인데 이중 98%가 1년이상 생존하고 있다" 고 밝혔다.

지금까지 성인만을 대상으로 하던 연구가 어린이 또는 초기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에게도 확대되고 있다.

쎄미나에 참석한 가톨릭의대 여의도성모병원 김동욱(혈액종양)교수는 "그동안 18세 이하 환자는 윤리적인 문제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일부 소아환자에도 같은 계열의 암 유전자가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현재 1.2단계(相)임상 시험이 진행되고 있다" 고 밝혔다.

◇ 덩어리 암에도 효과 있나=이번 심포지엄에서 가장 관심을 끌었던 주제는 고형 암에 대한 글리벡의 치료 효과.

이러한 효과는 글리벡이 일부 고형암에 관여하는 유전자(PDGF, c-kit)를 차단하는 성능이 있기 때문에 기대되고 있다. 대표적인 암이 위장관암 중 암세포가 위벽 근육에 발생하는 위기저(胃基底)암이다.

노바티스사 연구위원 캡드빌 박사는 "PDGF와 c-kit와 같은 암 유전자는 암세포의 증식을 활성화시키는데 관여하기 때문에 글리벡으로 이를 차단할 경우 고형 암도 치료할 수 있다" 고 밝혔다.

이밖에 미국 임상종양학회에서 발표한 임상결과에 따르면 36명의 위기저암 환자들에게 하루 4백~6백㎎의 글리벡을 투여한 결과, 초기 증상을 지닌 환자의 89%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1~3개월 후에는 54%의 환자가 투약한 양과는 상관 없이 치료 효과를 보였으며, 특히 3명은 종양이 48~49%씩 축소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글리벡의 고형 암 임상연구 대상은 소세포성 폐암.전립선 암, 일부 뇌암과 연부육종 등이다.

◇ 치료 효과를 높이는 새로운 연구들=지금까지 연구는 치료가 불가능한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로 한정돼 있었다.

따라서 임상연구를 초기 발병 환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다른 치료제와 병합.사용할 경우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영국 왕립의대 쥬니아 멜로교수는 쎄미나에서 "암 세포의 내성(耐性)과 돌연변이를 줄이고, 재발을 막으려면 글리벡을 초기에 사용해야 효과가 높다" 고 밝혔다.

암세포를 생산하는 공장 즉 암 생성 유전자가 적을 때 공격해야 완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

김동욱 교수는 "현재 글리벡을 인터페론과 함께 사용한다거나 골수이식 전후에 투여하는 임상연구가 진행중이어서 글리벡에 대한 연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고 말했다.

도쿄=고종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