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조 백일장 8월] 초대시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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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해바라기처럼

-박 영 식-

장맛비 가마솥더위 성큼성큼 건너 뛰어

이 가을 문전에 와 당당히 선 해바라기

일제히 神의 풀무질로 노란 꽃불 일렁인다.

태양을 품은 열애 다진 슬픔 씨앗 여물 듯

문명의 꿉꿉한 삶 마음볕에 잘 말려서

차르르 알곡을 쏟듯 사는 재미 쏟아보자.

미움의 가시 쏘옥 빼고 헝클린 눈빛도 풀고

해닮아 해맑은 모습 해바라기 해바라기처럼

가벼운 걸음걸이로 웃음꽃 활짝 피워보자.

◇ 시작노트

여러 꽃들이 강한 햇빛에 노출되면 지쳐 헉헉되게 마련인데 유독 해바라기만은 말 그대로 작열하는 태양을 품에 안고 산다. 강인하면서도 정열적인 삶, 그러면서도 열애의 슬픔을 씨방 가득 다이어먼드를 방불케 하는 결정체로 다지며…. 변두리로 조금만 눈길을 돌리면 바로 지금이 온통 해바라기들만의 축제인 일렁이는 노란 꽃불의 물결을 만끽할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명의 급류에 길들여지면서 건강한 웃음을 잃고 산지 오래다. 어디 한곳 '참 좋다, 하하하' 를 토할 만한 표정들을 볼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더러 해바라기를 닮은 삶을 모방이라도 하면 안되는 것일까.

◇ 약력

▶1952년 경남 삼천포 출생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당선

▶『가난 속의 맑은 서정』등 저서 다수

▶성파시조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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