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년 내수’ 교육·의료·통신 서비스 … 글로벌 스타 기업 20개 키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 1위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은 최근 몇 년간 해외시장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가입자 330만 명이 목표였던 미국에선 재미교포를 중심으로 18만 명밖에 모으지 못하고 2년여 만에 사업을 접었다. 중국에선 현지 통신기업에 약 1조원을 투자했지만 역시 별 성과 없이 지분을 정리했다.

대리운전 기사인 김병진(56·가명)씨는 대기업 계열 전자회사 출신이다. 승진에서 탈락한 뒤 2001년 자의 반, 타의 반 회사를 떠났다. 해물탕·돈가스·김밥집을 차례로 열었지만 서비스업 경험이 없는 데다 하루가 멀다 하고 주변 식당이 늘어 문을 닫았다. 한때 500만원 넘는 월급을 받던 그가 대리운전으로 손에 쥐는 돈은 월 100만원 정도다.

제조업 강국 코리아가 처한 상황은 이렇다. 정보기술(IT)·자동차 등 제조업이 세계 시장을 무대로 경쟁력을 키우는 동안 내수·고용을 맡아온 서비스업은 거북이 걸음을 면치 못했다. 제조업의 1인당 연간 부가가치(2008년 기준)는 6410만원이다. 서비스업은 3480만원으로 절반 수준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데 세계 시장에서 먹힐 리 없다. 지난해 상품수지는 561억 달러 흑자를 냈지만 서비스수지는 172억 달러 적자였다. 한국은 독일·일본·캐나다에 이은 세계 4위 서비스수지 적자국이다.

러시아인 마리나 골루베바(47·오른쪽)가 서울 상일동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에서 사상체질 검사를 받고 있다. 외국인 환자를 국내 병원에 유치하는 것도 대표적인 ‘서비스 수출’이다. [강정현 기자]

◆수출 20%는 서비스로=국내 최대 IT 제조업체인 삼성전자의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은 89%다. 시스템 구축·컨설팅 등 IT서비스 분야의 국내 1위인 삼성SDS는 13%다. 한국이 상품 수출만으로 계속 먹고살 수 있다면 상관없다.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국제 경제전망 조사기관인 글로벌 인사이트는 한국의 수출 증가율이 2014년부터 한 자릿수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전체 수출에서 서비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대 중반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20년까지 이를 적어도 20%로 끌어올려야 전체 수출의 두 자릿수 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비스 수출상사’ 키워야=한국의 제조업 수출 신화 뒤에는 세계를 내 집처럼 뛰어다닌 종합상사가 있었다. 해외 마케팅을 도왔던 코트라의 역할도 컸다. 하지만 서비스 수출에선 이런 역할을 제대로 하는 곳이 없다. 삼성물산 상사부문의 연매출은 5조원 안팎이다. 이 중 서비스 수출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것은 1% 남짓이다. LG상사 등 다른 곳도 사정이 비슷하다. 72개국에 100여 개 해외 거점이 있는 코트라도 활용도가 떨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제조업 수출은 주로 지식경제부가 담당하지만 서비스업은 의료(보건복지부)·교육(교육과학기술부)·콘텐트(문화체육관광부) 등으로 흩어져 있다”며 “부처 이기주의까지 겹쳐 해외 수출 상담회 예산 확보도 어려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수출 창구가 꼭 기존 상사일 필요는 없다. SK텔레콤은 지난해 6개월 동안 영국·인도·말레이시아 등 20여 개국의 시장 조사를 했다. 그간의 실패를 딛고 정보통신기술(ICT)을 금융·유통·교육 등 다른 산업과 연계해 생산성을 높이고, 동반 해외 진출을 노리는 ‘ICT 종합상사’가 되겠다는 게 이 회사의 목표다.

서비스 수출기업을 키우려면 제조업 일변도의 지원 시스템도 대폭 손봐야 한다. 정부는 2008년 연구개발(R&D)에 10조8000억원(지경부 기준)을 썼다. 이 중 서비스 개발·혁신에 투자된 돈은 570억원(0.5%)이다. 정부는 2012년까지 서비스 R&D 투자를 연 1200억원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그래 봤자 1% 정도다. 국민경제자문회의(의장 이명박 대통령) 부의장을 맡은 이화여대 유장희(경제학) 명예교수는 “정부가 서비스 수출을 키울 생각이라면 R&D와 관련 인프라 구축에 들어가는 돈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김선하·이한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