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제난국 이렇게 대처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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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경기가 급랭하고 있다. 국내 총생산 성장률은 재작년 10.7%, 작년 8.8%였는데 올해 1분기 3.7%, 그리고 이번 2분기에는 2.7%로 추락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는 것인가.

우리는 지난날 수많은 불황을 겪고 이를 극복해 왔지만 지금의 불황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점에서 과거와는 다르다.

*** 불황의 원인 과거와 달라

첫째로 불황의 근본 원인이 수요부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구조적 부실 때문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엄청난 기업부실과 이로 인한 금융부실의 악순환에 걸려 있으며 이것이 불황의 진원(震源)이다.

문제를 더 좁혀 말한다면 지금의 경제난국은 1백조원의 빚을 남기고 쓰러진 대우와 수십조원의 빚을 떠넘기고 있는 현대의 문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따라서 현재의 불황은 기업과 금융의 구조조정을 통해서만 근치될 수 있으며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으로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현재의 우리나라 불황은 세계적 불황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 경제의 기관차 역할을 해온 미국.일본.독일 등 세 나라는 올해 제로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대부분의 남미 국가들과 그동안 잘 나가던 대만.홍콩.싱가포르 등 동남아 나라들은 올해 2분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만의 독자적인 활로 모색에는 두터운 벽이 있으며, 따라서 파도를 거스르지 않고 타는 방향에서 길을 찾을 수밖에 없는 제약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특수성을 지닌 현재의 불황경제에서 경제활력을 되찾고 기업의욕을 되살리는 방안은 무엇이며 국민경제의 각 분야는 그 역할을 어떻게 분담해야 할 것인가.

먼저 정부는 구조조정과 보완적인 방향에서 경기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재정확대 중심의 케인스적 경기부양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불황의 원인이 수요부족에 있는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시장금리를 올려 구조조정 정책에 상충하고 재정수지를 악화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기대책의 중심은 금융과 수출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금융에서는 돈을 넉넉히 풀고 금리를 내려 기업의 구조조정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수출 쪽에서 숨통을 트기 위해서는 환율이 달러당 1천3백50원 수준은 되도록 해야 한다. 물가에 미치는 부정적 작용보다 경기와 국제수지에 미치는 순기능이 더 클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부실기업의 구조조정, 특히 대우와 현대 문제를 조속히 매듭지어야 한다. 예컨대 대우자동차 문제를 매듭짓는 것은 몇조원의 경기부양 자금을 푸는 것보다 사태수습에 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노동운동이 협력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늘 실업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시대에 들어서 있다. 실업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노사가 산업평화를 이룩하고 근로자들이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 그리고 부유층과 일자리 있는 사람들이 실업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로 정치권이 생산적 정치의 새 장을 열어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야 한다. 오늘날 경제효율과 정치효율은 표리의 관계다. 산적한 경제현안들이 국회에서 휴면상태로 적체돼 있고 추경예산조차 지금껏 처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안타까운 일이다.

*** 대우.현대 조기에 매듭을

끝으로 국민은 당장 불황에서 벗어나는 비방이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욕구 자제와 내핍 자세로 고통을 분담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성장 3~4%, 물가 4%, 경상수지 흑자 1백30억달러 등으로 요약되는 올해 우리 경제는 어렵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세계적으로 보면 좋은 편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살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여름 휴가에 부유층은 해외로, 그리고 서민들은 모두 일을 멈추고 차를 몰고 바다로 달려가 서울이 텅텅 비는 모습을 보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어느 외국인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박 승 (중앙대 명예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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