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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숙씨 파리 패션쇼 참관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지금 세계의 패션계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동.서양의 경계가 무너지고 전통과 현대가 만나는 곳이 바로 패션의 장이다.

지난 2일부터 3일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9회 국제 복식학회 대회의 국제의상전에서는 한국.대만.일본 동아시아 3국의 의상을 실물 크기로 전시해 세계 의상 관계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같은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이지만 이들 3국은 공통점 못지 않게 특징도 뚜렷했다.

대만의 의상들은 뿌리깊은 전통의 영향으로 검정과 붉은 색을 위주로 한 강한 색감과 뱀.용.호랑이.물고기 등의 형상에서 모티브를 따 온 뚜렷한 문양과 패턴이 눈에 띄었다. 또 중국 전통 경극에서 볼 수 있는 가면 형태를 의상 위에 문양화한 작업도 관람객의 시선을 잡았다.

일본의 의상들은 온후한 색감과 전통문양 및 실루엣을 적절히 배합시킨 스타일과 동시에 미니멀하고 심플한 실루엣 위에 실험적 표현기법이 엿보이는 현대적 스타일이 함께 전시됐다.

우리나라는 디자인의 다양성과 질감의 풍부함에서 단연 앞선 작품들로 이어졌다. 곤룡포.적의.원삼 등 전통 복식들은 화려한 색감과 디자인에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으며, 전통 재질을 응용한 현대적 작품들은 독특한 질감으로 보는 이들의 감성을 두드렸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품에서 '한국적' 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한 공통점을 찾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일부 작품에서 한복의 선과 조화를 이룬 드레스의 실루엣, 전통적인 한복의 질감을 이용한 디자인, 조각보의 누빔을 응용한 형태 등에서 한국적인 전통을 계승하려는 노력 등이 눈에 띄었지만 '한국적' 이라는 수식어를 달기에는 부족했다.

21세기 패션시장에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띠면서도 한국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스타일에 대한 고민은 우리나라 패션계의 화두다. 전통을 그대로 복제하는 것과 전통을 현대적으로 수용.재창조하는 것은 다르다. 이미 세계화된 우리의 눈과 귀가 긍정할 만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지금' , '여기에서' 수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고민할 때다.

김현숙 (단국대 예술조형학부 교수.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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