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포착한 '현장2001…' 전 31일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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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1980년에 태동했던 민중미술은 미술을 통해 역사를 바꾸려는 체제변혁 운동이었다. 계급과 통일문제 등을 제기하며 군사독재와 싸웠던 민중미술 운동은 90년대 들어 역동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사회주의 체제의 국제적인 몰락과 국내정치의 민주화에 따른 결과다. 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된 '민중미술 15년전' 은 민중미술의 시대적 유효성이 종결됐음을 선언하는 '장례식' 으로 평가된다.

이후 민중미술은 제도권으로 편입, 파편화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동시대에 대한 비판과 고발이라는 리얼리즘의 의미는 시대와 상황이 달라진다고 해서 아주 사라지지는 않는 법이다.

삶의 현장을 기록하고 증언하는 젊은 작가들의 활동은 계속돼 왔다. 투쟁성 대신 고발성이 두드러진 이같은 작업들은 이제 민중미술이란 이름 대신 '현장미술' 로 불린다.

이번 전시엔 80년대 말 이후 10여년간의 작품을 작가별로 4~5점씩 내놨다. 이들 작품은 노동자와 노숙자.여성.환경.자본과 계급 문제 등을 생활현장에 밀착해 제기하고 있다.

87년 시위 도중 숨진 이한열을 담은 대형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 로 유명한 목수 출신 현장미술가 최병수씨는 '반전반핵도' (88년작) '하늘마음 자연마음' (2000년작) 등을 보여준다. 지난해 새만금 개펄에 설치됐던 솟대작품 '하늘마음…' 은 이번에 미술관 옥상에 자리잡고 환경보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MBC 구상조각 대전을 수상한 구본주씨는 91년작 '갑오농민전쟁' 과 99년작 '위기의식' 등을 보여준다.

'갑오농민전쟁' 은 시퍼렇게 날이 선 낫을 쥔 강인한 팔뚝을 형상화한 데 비해 '위기의식' 은 목을 장대처럼 길게 빼고 앞을 살피는 샐러리맨의 현실을 고발해 금석지감을 느끼게 한다.

웹아트와 설치, 영상작업을 주로 하는 '시대미술' 가 이중재씨는 동영상 설치와 비디오작품을 내놨다. 96년작 동영상 '메이드 인 캐피탈' 은 피를 흘리면서도 줄을 지어 가고 있는 군중들을 통해 자본의 착취를 고발했다.

99년작 '보이지 않는 위험' 은 컴퓨터 슈팅게임 마지막에 군인이 관객을 향해 총을 겨누는 장면을 넣은 섬뜩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 제목으로 사용된 정태춘씨의 노래 '건너간다' 를 음악비디오로 제작한 작품도 보여준다.

충남 당진 참여연대 회장으로 활동 중인 최평곤씨는 대나무로 엮은 8m, 6m, 3m 높이의 거인조각을 통해 인간의 미래에 대한 구도적 메시지를 나타냈다. 이밖에 한국과 독일의 이주 노동자를 사진에 담은 박경주의 '이주노동자' , 노숙자에게 음식을 주는 곳과 쉴 만한 곳을 표시한 배영환의 '노동자수첩' 등도 전시 중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가나아트 닷컴 전시기획자 김준기씨는 "80년대에 20대를 보낸 386세대 작가들은 '서른, 잔치는 끝났다. 그러나 현장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는 고집과 열정으로 활동을 계속해 왔다" 면서 "현장과의 유기적인 호흡을 놓치지 않고 시대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자세로 전시회를 마련했다" 고 설명했다. 02-737-7650.

조현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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