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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성가대 남성 소프라노 거세 용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바티칸이 수백년간 시스티나 성당 성가대 소속 보이 소프라노의 거세를 부추겼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면서 앰네스티 인터내셔널 등 인권 단체와 역사학계를 중심으로 '역사적 과오' 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도 교황의 공개사과를 요구하고 나섰다.

교황청 공식 기록에 따르면 시스티나 성당 성가대에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소프라노)가 처음 들어온 것은 1599년. 지금까지 바티칸 최후의 카스트라토는 1913년까지 성가대에서 노래한 알렉산드로 모레스키라는 게 정설이다. 하지만 교황청 소속 가수로 39~59년 활동했던 도메니코 만치니도 카스트라토였다는 주장이 최근 나왔다.

어쨌든 바티칸이 카스트라토를 금지하는 교령을 발표한 게 1902년이니 그후에도 계속 카스트라토를 채용해온 것이다. 말에서 떨어지거나 동물에게 고환을 물렸다는 등 그럴 듯한 구실을 대면서.

교황사 연구의 권위자인 니컬러스 데이비드슨(옥스퍼드대)교수는 "가톨릭 당국이 부적절한 방법으로 카스트라토를 용인해왔다면 역사 앞에 사과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가난에 허덕이던 이탈리아 부모들이 일확천금을 꿈꾸며 아들을 거세 했다는 것이다.

가톨릭에서는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할지어다" 라고 말한 바울의 교훈을 확대 해석해 남자들로만 성가대를 구성했다. 보이 소프라노들은 음악적으로 숙달이 되면 변성기를 맞았고, 가성(假聲)으로 내는 고음은 너무 약해 카스트라토를 필요로 한 것이다.

카스트라토는 수술이 실패할 확률도 높았다. 94년 제라르 코르비유 감독이 영화화한 파리넬리처럼 유럽 전역을 휩쓸면서 슈퍼스타의 대우를 받은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단순하 성불구자로 일생을 보내야 했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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