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량의 월드워치] 다가서는 미국-인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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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남아시아의 국제정치 구도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미국은 지난 3년 동안 유지해온 인도에 대한 경제제재를 조속히 해제하는 한편 양국간 군사교류를 확대해 나가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같은 움직임은 남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인도와 손잡고 강력한 라이벌인 중국을 포위.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특히 조지 W 부시 행정부로선 급선무인 미사일방어(MD)체제를 인도가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 MD계획의 협력자를 확보하는 차원에서도 인도는 중요하다.

냉전 시절 남아시아에선 미국-중국-파키스탄과 소련-인도 두 축(軸)이 세력균형을 이뤘다. 그러나 냉전 종식후 러시아의 영향력이 약해지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1998년 5월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감행한 대가로 경제제재 조치가 가해졌음에도 인도에 대한 외국자본 직접투자에서 미국은 줄곧 1위였다. 지난해 3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를 1주일 동안 순방할 때도 대부분 일정을 인도에 할애했으며, 냉전 시절 맹우(盟友)였던 파키스탄에선 불과 몇시간 머물렀을 뿐이다.

클린턴 행정부는 인도의 핵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을 고려해 양국 관계를 가급적 경제분야에 국한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이에 반해 부시 행정부는 군사협력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지난 4월 자스완트 싱 인도 국방장관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부시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나서 MD계획을 깊이 논의했다. 이어서 5월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副)장관, 지난달 헨리 셸턴 합참의장이 인도를 방문했다.

미국과의 관계 개선은 인도에 여러 면에서 유리하다. MD계획에 참여함으로써 군사대국으로서 위상을 높이고 이를 토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을 노린다.

또 앙숙인 파키스탄과 미국의 사이를 벌려 놓는 효과도 있다. 그렇다고 러시아와 오랜 우호관계를 손상시키는 것도 아니다. 지난해 10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했을 때 양국은 '전략적 파트너십 선언' 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인도는 러시아로부터 각종 첨단무기를 대량 구입하기로 약속했다.

인도의 이같은 적극적 변신은 자신의 힘에 대한 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10억이 넘는 엄청난 인구에 핵무기로 무장한 세계 3위의 병력, 그리고 최근 들어 정보기술(IT)산업에서 슈퍼파워로 부상한 인도의 힘은 놀랄만하다.

10년간 매년 50% 이상 성장한 IT산업 덕분에 인도는 매년 7%의 고도성장을 계속 중이다. 해마다 7만명의 IT 전문인력을 배출해 세계 소프트웨어 시장의 20%를 차지하고 연간 60억달러의 소프트웨어를 수출하고 있다.

미국과 인도의 접근에 이웃나라인 중국과 파키스탄이 위협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둘은 힘을 합쳐 미국과 인도를 상대로 파워 게임을 벌일 것이다. 앞으로 핵무기.미사일 개발 등 군비경쟁의 가속화가 예상된다. 남아시아가 국제정치의 새로운 화약고로 등장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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