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이 경고해도 팽창하는 가계부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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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 2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550조5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8000억원 늘어났다. 지난 1월 1조원 감소했던 가계대출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선 것이다. 이와 함께 신규 대출자용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역대 최저 수준인 연 3%대로 진입했다. 시장 금리가 워낙 낮은 데다 수도권 아파트의 입주가 몰리면서 제2 금융권의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계속 풀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계대출 연체율은 0.63%로 안정적인 수준이다. 가계대출의 67%가 소득 상위 40%의 가구에 집중돼 있어 당장 가계부채 문제가 금융기관 부실을 초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도 강화해 놓고 있다. 그러나 지난주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보고한 것처럼 우리의 가계대출이 과도한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비율은 80%를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0%)을 웃돌고 있다.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도 145%로 미국(126%)이나 일본(110%)보다 높은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자산은 가계 자산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가처분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주택담보대출만 가파르게 증가하다간 언젠가 문제가 터진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急落)하면 경제 전체가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위기나 일본의 ‘잃어버린 10년’도 과다한 부채가 곪아터지면서 일어났다.

지난달 이명박 대통령도 증가 속도가 가파른 가계 빚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점검해 나가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가계 부채는 국가 채무와 함께 우리 경제에 잠재한 가장 큰 위협 요인이다. 한국은행이 기준 금리를 올리면 가계의 상환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시한폭탄을 눈앞에 두고 한은 총재는 “가계부채 문제는 미시적(微視的)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책임으로 미룬 것이다. 대통령의 우려와는 사뭇 동떨어진 분위기다. 이래선 곤란하다. 날 선 경각심으로 종합대책을 서둘러야 한다.